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생 Oct 26. 2021

폴더폰처럼 스마트폰처럼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한 은유

다른 사람 앞에서는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자신에게는 고개도 숙이지 않고 대충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가요?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열심히 맞장구치면서 수긍하고 심지어 경청하면서, 자신이 말할 때는 시비를 걸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을 보면 어떤가요?


아마, 이 사람은 자신보다 강자에게는 굽실거리고 동등하거나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간신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앞에서 말한, 강자 앞에서 굽신굽신 거리는 사람에게 "폴더폰처럼" 인사한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등장했고, 지금도 최신 휴대전화에 적용되는 반으로 접는 방식의 전화기를 그 사람에 비유하는 것이지요.


허리를 굽히거나 엎드려 절하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사람 앞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충성서약입니다. 시선을 마주하지 않는 일은 어느 곳에서든 굴복의 상징이죠. 그러나 "눈을 까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허리를 숙이고 엎드려 버리면, 그 사람의 모습은 결코 볼 수가 없습니다. 절대적인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여호와는 자신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낸 이스라엘 족속들이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고 제를 올리며 유희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진노합니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애굽기 32:8-10]


자신의 말을 전할 모세를 기다리지 않고, 끝내 새로운 우상(금송아지)을 만들어 희생을 드린 이들을 두고 "목이 곧다"라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자신을 숭배하지 않은 상황은 이처럼 고개를 숙여 절하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폴더폰처럼 자신 앞에 서지 않는 일이 부정적일까요? 저는 오히려 누군가가 어떤 사람 앞에서 폴더폰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에 나온 이야기는 신과 사람의 관계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감히 인간은 행할 수 없는 기적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고래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그를 보지 못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심지어 현대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겠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스마트폰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스마트폰처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반응을 합니다. 어떤 말과 행동도 할 수 있고, 그 말과 행동에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옵니다. 이때 긍정적이라는 말은, 무조건 "YES"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무언가를 행하면, 반드시 반응이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굽신거려야 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꺼이 반응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마찬가지로 폴더폰이 되어버린 사람도 그 사람에게 정해진 반응 이외의 반응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결국 부정적인 반응인 셈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폴더폰이 되면, 상당히 예의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관계는 경직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마트폰이 되면, 무례하게 보입니다. 만약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라면, 유연해 보이던 관계가 결국 경직되다 못해 깨져버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적어도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폴더폰처럼 행동하는 상황은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폴더폰처럼 몸을 접으면, 몸을 접은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일까요? 아닐 겁니다. 목이 곧은 사람, 허리가 빳빳한 사람도 결국 몸을 접은 사람의 정수리나 뒤통수만 볼뿐입니다. 서로에게 얼굴을 내 보이지 못하는 관계, 서로의 표정을 살필 수 없는 관계는 '소통하는 관계'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로 스마트폰을 쓰듯이 무례하게 말하고 행동하자고요? 아닙니다. 폴더형 스마트폰이 있잖아요. 폴더폰처럼 정중하게 인사하되 그 본질은 스마트폰이 되면 되잖아요. 서로 나누는 대화의 방식을 스마트폰처럼 다채롭고 즐거울 수 있잖아요. 그러면 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눈치껏 말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병명(甁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