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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09. 2022

나만 외꺼풀이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환담(歡談)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베트남 학생이 일본 학생에게 일본 학생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마이’는 베트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다른 학년에 마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트남 친구들이 많았기에 공감하면서도, 일본에도 마이가 있고 베트남에도 마이가 있고, 다른 나라에도 마이가 있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쌍꺼풀이 있느냐 없느냐로 흘렀는데, 베트남, 중국, 일본,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학생 모두 태생적으로 쌍꺼풀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국인처럼 보이는 외모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외국인처럼 보이는 외모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차별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실 한국 사람인지 아닌지 외모만 보고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 말조차도 그들에게는 의아하고 불편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무 위키에서 ‘마이’는 “일본어, 베트남어권의 여자 이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상세 설명으로는 “일본인 인명의 한자 표기로는 舞, 米, 麻衣 등이 사용되며 베트남어로는 황금색 꽃을 뜻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베트남과 일본 이외에는 마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한편, 한국에서 ‘마이’라는 단어를 가장 쉽게 접하는 경우는 ‘재킷’을 가리키는 단어나 ‘많이’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누군가 재킷을 찾으며 “내 마이 못 봤어?”라고 말하면 응당 옛날 사람이거나,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밥 마이 뭇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연히 경상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쉽게 따라 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만약, 미국에서 마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그 사람의 조상 중에 일본인 혹은 베트남인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Van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네덜란드 사람을 떠올리고, Sch라는 발음이 들어가면 독일이나 게르만어를 사용하는 국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어떤 발음으로 그 사람의 국적, 민족, 인종, 역사, 문화까지 모든 것을 떠올리곤 한다. 그것이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일지라도 말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본래는 어떤 소리였고, 그 소리는 어쩔 수 없이 물리적 거리를 기준으로 의미를 형성된다. 들을 수 있는 거리의 사람과 소통 코드를 형성하는 것이다. 가까운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약속이었을 테니, 특정 지역과 문화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분화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도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고, 그 정체성은 역사적으로는 당연히 사는 지역, 직업, 신분, 문화 등과 연결되었다.       

 

  예전에는 그것이 자랑스러웠을지 모르지만, ‘표준어’라는 제도가 생기면서는 ‘표준화된 발음’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어서 사투리를 쓴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나아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가 생기면서, 또 그것이 자연스럽게 북반구와 남반구를 경계로, 유럽과 미국, 아시아로 나뉘면서는 특정한 언어가 더욱 세련되고 멋진 것처럼 생각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 학생들과 나눈 대화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갑’이다. ‘교수님’ 혹은 ‘선생님’으로 불리면서, 한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 소통을 강요하는 갑질을 하고 있다. 쌍꺼풀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나보다 더 넓은 눈꺼풀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더 크게 눈을 뜰 수 있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보다 많은 소리를 가지지 못했으면서, 내가 가진 하나의 소리를 가르치는 나에게 한국어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호응하는 그들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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