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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11. 2022

착한 사람

누군가를 보면서 "착한 사람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데 행위의 결과는 크게(혹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가 다른 사람과 나 '사이'를 얼마나 신경 쓰고 행위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 내가 하는 말이 정말 좋은 말인지 아닌지,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헤아리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칭찬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을 때 뜻밖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예쁘다"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데이트 폭력의 상흔일 수도 있고, "잘생겼다"라는 말이 다른 능력으로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좌절시킬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이 개성을 찾으려는 그 사람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말이다.

착한 사람에게 "당신은 착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맞아요 저는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누군가에게 착하다는 칭찬을 받을 때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처는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우연히 발생했을 뿐이다.

착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가 아닌 타인의 반응까지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나에게 가져다주는 행위의 결과에 따라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곤 한다.

예컨대, 힘겹게 이별을 말하는 사람에게 힘겹게 업무에 관한 어려움을 개선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기적이다, 매정하다, 나를 무시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괴롭게 고민하며 보냈던 시간을 헤아리지 못할 때, 그것이 바로 '보복'으로 구체화되는 게 아닐까.

그 사람이 나에게 그 말과 행동을 내 보이기까지 고민하며 괴로워한 시간을 생각하면, 그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나에게 가장 친절한,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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