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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25. 2022

무승부

스포츠 경기는 인간의 폭력성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안의 거친 숨소리와 흐르는 땀, 격한 언행들이 생존을 건 치열한 전투를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승부라는 단어는 많은 관객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승리하기를 바라던 사람들이 한숨을 쉰다. 선수는 응원하는 자의 화신(아바타)으로 나 자신의 대리전을 치른다.

무승부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관점도 있다. 질 수밖에 없는 전력 차이가 있었음에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승리나 마찬가지라고 바라보는 관점이다. "졌잘싸"라는 말도, 패배가 만연한 우리네 삶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리라 싶다.


'무승부'라는 말속엔 언제나 '싸움'이 존재한다. 싸우지 않는다면 '무승부'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게다. 그러나 우리 삶은 언제나 경쟁이고, 전투, 전쟁이다. 그렇다고 이야기했고, 별 의심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고, 싸움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에게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핀잔을 되돌려 주기도 한다.

 

'무승부'라는 말이 결코 기쁘지 않은 이유는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겠다. 이기지 못함을 향한 아쉬움에는 상대방을 향한 폭력성이 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 자신에게 무승부가 기쁨일 수 없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싸움이 일어났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싸움이 넘치고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왕 싸웠다면 이겼어야 했다. '싸움', '전투'는 언제나 '생사'를 걸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싸우지 않고 살아남을 수 없다면,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무승부라는 말은 아름다울 수 없는 말이다.


싸우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악수할 수 있었다면... 싸움 없이도(승부를 겨루지 않음: 무승부)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생각해 본다.

승, 패, 무승부라는 말 자체를 사용할 일이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듯한 '골인'에 환호하고, '빗나간 공격'에 탄식하는 모습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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