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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an 14. 2023

자전거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나는 걸어 다녔다. 친구들 중에는 손잡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페달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내 걸음걸이에 맞춰 주기도 했다. 그것이 고마웠는지 미안했는지, 혹은 괜히 자존심이 상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가 걸어 다녔던 기억도 난다. 농구공을 텅텅 튕기면서 농담도 하면서.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가장 먼저는 아마, 자신감 부족이었을 것 같다. 유년시절, 성격은 좋지 않았는데 주눅은 잘 들었던 것 같다. 골목 내리막길을 자전거로 내려오다가 전봇대에 부딪혀 넘어졌던 기억이 있다. 전봇대 옆 개똥도 밟았거나 짚었던 것 같다. 


내리막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내리막길에서 사고를 많이 당했다. 장난감을 사고 기분 좋게 달려 내려오다가 공사현장을 둘러친 철조망 울타리에 허벅지를 찢어 먹었다. 흉터가 그날을 기억한다. 태권도 새벽 반을 마치고 신나게 달려오다가 골목에서 진입하는 자동차에 부딪혀 넘어지기도 했었다. 내리막을 즐기던 나의 모습은 항상 사고로 끝났다.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어릴 적 배우지 않고, 나이가 든 6학년 때(중학교 1학년인가?) 처음으로 네 발 자전거를 탔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가르쳐 주겠다고 구입해 왔지만, 이미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내가 주차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볼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싫다고 짜증을 냈던 것 같다. 한두 번 탔을까? 그 뒤로 그 자전거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자신감 부족과 부끄러움은 결국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어릴 적 많이 혼났던 기억밖에 없는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운다는 건 썩 달갑지 않은 일로 다가왔을 테니까 말이다. 


바퀴 달린 것 중에서는 유일하게 탈 수 있는 자동차마저도, 사실 아버지 때문에 거부했던 존재다. 문수산을 오르면서 운전면허 이야기를 꺼낸 아버지에게 나는 불같이 화를 내고 먼저 성큼성큼 나아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러면서도 결국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군대 가서는 운전병까지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내가 면허를 한 번에 취득하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아, 이듬해 몇 번의 도전 끝에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면허를 취득했다. 생각해 보면, 그날 아버지가 나에게 면허증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아들이 가지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동료분들이 혜택을 받으며 자동차를 구입할 때, 자신은 자동차를 구입할 일이 없다는 게, 나 같으면, 엄청난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지금도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법 여부를 떠나 멋스럽게 보인다. 그러면서도 도전하지는 못한다. 위험하기도 하고, 그걸 배우러 다니는 나 자신의 모습이 괜히 부끄럽다. 그저 동경의 대상인 자전거와 오토바이.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되어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물론, 자전거를 탈 수 있다 한들, 내 성정 탓에, 아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아들은 나를 닮았다. 내가 아버지를 닮은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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