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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15. 2023

저는 비주류입니다

비주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정용호 선생님은 술 안 드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싶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건 아니다. 은사님이 주시는 맥주는 한 잔 받고, 그 한 잔으로 모임을 마칠 때까지 입술을 적시니까. 다만, 술을 마시지 않아야만 한 선생님 말처럼 "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지금껏 술 때문에 일으킨 숱한 사건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나 할까? 술을 완전히 줄인 건(이제는 끊었다고 말할 수준이지만) 2019년 이후인 것 같다. 과음했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 헐크다. 술이 몸안을 흐르지 않을 때에도 그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스스로에 관한 통제력이 없는 내가 술을 섭취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주류(술을 마시는 사람)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과 멀어졌다. 비주류로 지내는 지금이 오히려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날 줄 모르고,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많고 자신감이 없어 불안하기만 한 내가 주류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별한 걸 먹지 않았지만...


  어제 뭘 먹은 게 분명하다고 말하는 분 앞에서 많은 걸 느꼈다. 평소에 쩔쩔매고 조용하고 눈치나 보며 지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농담하고 무례하게 끼어들고 텐션을 높인 상태도 타인의 눈에는 이상하기(비정상적이기)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신만큼 가까이 가기 힘든 존재는 역시 타인이라는 걸 깨닫는다.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런 면에서 어떠한 상태이든지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런 맹세를 하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사람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잘 생각해 봐요, 어제 뭐 먹었어요? 그 옛날 농담하는 게 어려우면 유머책을 사서 읽어보는 것도 좋다는 말에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처럼, 정말 어제 뭘 먹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이게 진짜 나라고. 대학이라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 연구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가벼움이 바로 원래 내 모습'이라고 말씀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원래도 이상했는데, 지금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상한 모양입니다"라고. 어차피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언제나 이상할 테니까.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괜한 넋두리에 술 마시지 않고도 울컥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내 넋의 소리를 꺼내 보이다 보니, 가장 약한 영혼의 일부분이 눈물로 흘러나오는 것이리라. 잘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가 눈물을 쏟게 한다. 오랜만에 안구건조증이 극복된 듯 눈물이 스며 나온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연구자 혹은 글(논문이든 뭐든)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내 욕심이 '자리'를 찾고 유지해야 하는 생계 앞에 좌지우지할 때의 초라함이, 그래도 너는 뭐든 해 볼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하릴없이 까발린다.

  

  문득, 아내가 자신이 읽던 책의 사진작가가 자신은 언제나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고 하더라는 걸 떠올린다. 아내는 그 말에 절실한 마음이 가득 담겼다고 말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낯익었다. 역시 그랬다. 언젠가 논문에서 봤던 바로 그 이름.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진을 찍고, 가죽 공예를 하면서 글을 쓰려는 열망을 품고 살아가는 그도 나처럼, 누군가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는 했을까. 하긴,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눈물이나 잘 간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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