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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09. 2023

걱정 대출 한도 초과

그래, 나는 걱정이 많고 부정적인 성격이지

끊어야지 끊어야지 끈기를 가져야지 했는데도, 어쩌다 또 저지르고 말았다. 늘 밝은 표정으로 지내려고 했는데, 어제는 어찌 된 일인지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장염으로 고생하는 신체 때문에 정신이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예전처럼, "봄을 타듯" 그렇게 기분이 가라앉는다. 아마도 그 원인은 걱정 탓인 듯하다.


걱정 대출


걱정의 대부분은 불필요하다고 들었다. 아무리 건설적인 걱정이라고 해도, 현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나친 걱정은 결국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걱정이 많은 편이다. 예전부터 여기저기 미리 끌어 쓴 걱정이 많다. 20대에는 30대를, 30대에는 40대를 걱정했다. 태어나서는 죽음을, 결혼하고는 생계를, 취업하고는 퇴직, 계약하고는 계약만료를 걱정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러면서 아직 갚지 못한 걱정거리인 1년짜리 객원교수 직을 재계약했다. 연봉 2천이 조금 넘는 볼품없는 계약서를 바라보면서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직장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지 못하는 건, 스스로 가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 정도 연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낙숫물에 바위 뚫듯 조금이나마 흘러 들어오는 수입이 있어야 숨통을 트일 수 있으니 붙잡고 싶은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나에게 큰 걱정과 자격지심, 열등감을 안겨준다. 박사학위이지만 지방대학, 대학 교수이지만 객원교수라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니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누어지는 계약에 따른 계급. 학교 안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는 전임교수들은 나 같은 사람이 느끼는 삶의 고단함을 알지 못하리라. '승진'과 '보직', '연구실적'을 언급하는 그들에게서 잘 만든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게 바로 열등감이다. '억울하면 너도 하면 되잖아, 거기 앉아서 짜는 소리 하고 있어?'라는 비난이 들린다.


아무튼,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기타 수입이 필요하니, 외부 강의 요청이 무척 반갑다, 그것을 모두 해낼 수 있는 체력이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지만(어제 120km 운전을 하고 느꼈더랬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만 오시다가 젊은 선생님이 오셨다"라고 말씀하시는 수강생 분이 계셨다. 마음이 착잡하다. 내가 어릴 적, 서류 가방을 들고 캠퍼스를 누비던, 어느 벤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드시던 나이 지긋한 교수님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강사였다. 그들도 "젊은 교수님"이었을 것이나, 나중에는 "나이 들고도 시간강사"라는 비아냥을 받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끝없이 걷거나, 자동차 안에서 김밥을 먹거나, 벤치 구석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는 게, 바로 그런 추측을 하고도 남게 만든다. 그나마 달콤하던 자판기 커피는 이제 사라졌다. 씁쓸한 아메리카노만 남았다.


걱정은 불가피하지만, 굳이 대출까지 받아서 미리 할 필요는 없다. 걱정이 예습 효과를 낳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그러나 '걱정'은 행동을 낳지 못하기에 주차 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엑셀레이터를 밟는 일처럼,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다. 걱정은 미래를 향한다. 미래는 오지 않은 순간들이다. 어쩌면 오지 않을 순간인지도 모른다. 왜? '스스로 바라는 미래'는 '실제 다가올 미래'와 다르니까,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암흑에서 다가오는 것'이니까. 다만, '짙은 어둠에서 다가오는 미래에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꼰대'들이 조언하는 게 바로, 그런 '착각의 강요'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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