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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17. 2023

허니 버텨

삶은 원래 그렇잖아. 그러니 버텨야지.

  솔직히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없다면 거짓말이다.


  학교 강의를 마치고 도서관 두 곳을 가야 하는 일정이다. 한 곳은 한 달에 한 번, 다른 한 곳은 매주 한 번 간다. 공교롭게도 두 곳 모두, 창작 수업을 한다. 아내는 이런 내가 피곤할 것을 염려한다.


  그날은 열정이 넘치는 날이었다. 시를 쓰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해서 졸작 세 편을 만들어 갔다. 덕분인지 세 분이 시를 지어 제출하셨고, 그것을 읽으며 합평을 했다. 다섯 시까지는 도착해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네 시를 훌쩍 넘겨서 마무리하고 말았다. 허겁지겁 강의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밀양으로 향했다. 구간단속을 시행하는 고속도로와 시속 110km까지 허용하는 고속도로를 거쳤다. 앞에서 손해 본 속도를 만회하느라 뒤의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30km 정도 밟아주었는데, 어느 순간 관광버스 행렬에 가로막혀 느림보가 되고 말았다. 결국 5분을 넘겨 도착했더니 주차장마저 꽉 차버린 상태였다. 아무 데나 주차하고 얼른 뛰어 올라갔다. 지각이라니, 세상에. 내 손목에 감긴 시계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글을 쓰고 계신 분들과 초심자 분들을 모시고 수필 쓰기를 강의하는데,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확히 전하기가 쉽지 않다. 제법 언성을 높인 것처럼 기억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이 수업을 계기로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는 이미 글을 즐기고 계신 분들과 다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뭔가 무섭기도 하고(?).


  차에 올라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차 안을 울린다. 부족한 살림을 살아내는 아내에게 투정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투정이 섞였을지도 모르겠다. 낮에 어머니께서 부(符)를 전해주고 가셨단다. 절에서 준 부는 도로 어머니께 돌려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왜 그런고 물어보니, 절에서 받은 부적에는 사주풀이가 들어있지 않은데, 이번에 철학관에서 받아온 부는 사주풀이를 바탕으로 만든 부라서 그렇다고 했다.


  참 별스럽다 싶었지만, ‘십년대운’의 마지막 해라 신경 쓰셨을 엄마를 생각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직업적으로 힘들다고 했단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이라고 했단다. 아내의 사주에는 남편 걱정, 남편 걱정밖에 없단다. 결국 ‘내가 문제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굳이 사주가 아니더라도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가 힘이 나지는 않으니까”라고 답했다. 어떻게든 견뎌내는 것이 이번 해에 중요하다는데, 견디지 않아도 됐던 시기가 있었나 싶기도 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대학원 폐지에 관한 소문이 있었던 2010년,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수차례 유보를 반복하던 2010년대 중후반, 코로나보다 무서운 학생 감소로 인한 학과 존폐 걱정으로 함께하는 지금. 나는 언제나 견디고 있었기에, 그런 사주풀이가 전혀 무섭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내와 대화를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도 차분하게 들린다. 안부를 묻고 나의 안부를 전하면, ‘수고했어’라는 격려가 나 포근히 감싸준다. 어릴 적엔 늘 안겨 있었을 엄마의 품처럼. 별다른 말은 없었다. “열심히 하겠다.”, “언제는 안 그랬나, 뭐.”라는 너스레를 떨어본다. “나중에 놀러 갈게요.”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는다.


  무너져 내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 돌아서 버린 경우는 제법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봤던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만화들이 속속 복귀하는 걸 보면, 이 시대가 힘들기는 힘들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자들의 이야기. 설령 패배하거나 심지어 죽더라도 다시 일어나 싸우는 자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렇기 때문에, 굳이 보지 않지만.


  포기하고 싶은 때가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이미 몇 차례 왔다 간 것 같다.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올해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곁에 있다. 제아무리 튼튼한 제방이라고 한들, 너무 잦은 파도에는 쉬이 약해질 것만 같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이 허술한 방파제 위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발 딛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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