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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pr 06. 2023

터치세상

Touch 혹은 攄治

  ‘버튼’이나 ‘스위치’를 눌러서 작동하던 장치들이 설 자리를 잃는 요즘이다.

  손가락 아니, 얼굴만 ‘스쳐도’ 작동하는 시대. 여전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고개를 들어 기기를 바라봐야 한다며 인간의 역할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번거롭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제아무리 복고를 실현했다고 하는 제품조차, ‘버튼’과 ‘스위치’를 예전만큼 가득 채우지는 못한다. 디자인 요소로서 몇 개 채택될 뿐이다.     

  교실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교실이 컴컴한데도 불을 켜지 않고 앉아있더라고 들었다. 어둡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교수가 불을 켠다고 한다. 아침 수업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오후 수업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그런 경우가 있기에, 외국인 학생들만 그런 줄 알았다.

  프로젝터를 켜서 스크린에 컴퓨터 화면을 공유하면서 수업하는 날이면 교실 불을 모두 끈다. 그래야 화면이 잘 보인다. 수업을 마치면 다음 수업을 위해 한국 학생들이 밀려 들어온다. 자리에 앉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불을 켜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정리하는 동안 자리가 꽉 찼다. 그때까지도 불을 켜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이 수업에서 교수님이 컴퓨터를 쓰시는지 묻고 아니라는 대답에 컴퓨터를 껐다. 침침한 교실을 위해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 주고 나갔다.      


  쉬는 시간에 모든 학생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고 가지 않기에 10분 동안 ‘멍-’하게 앉아있거나 서성인다. 바쁘게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쓰다듬는 학생들을 보면서 묘한 미소가 스민다. 앞으로 인간은 어떤 일상을 살아갈까 궁금해진다.

  언젠가 상담했던 학생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요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텔레비전도 없다고 했다. 숙제하고,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한다고 했다. 요즘 시대에 종이사전을 뒤적이며 숙제할 리는 없고, 최후에 문자를 새기기 전까지는 손가락에 긴장을 풀고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고 쓰다듬는 모습일 게 뻔했다. 그들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번거로운’ 시간이 갖는 의미를 놓치는 것 같아서 아쉽기는 하다.     


  그날, 내가 빠져나온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도 스마트폰을 ‘쓰다듬으며’ 교수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전등’은 필요가 없다. 자기 손에 저마다의 빛이 존재하니까. 설령 교수가 들어왔다 한들, 굳이 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으로 출석 체크를 하는 세상이다. 그들이 봐야 할 건 스마트폰 화면이다. 서로 대화할 필요도 없다. 그것들은 ‘버튼’이나 ‘스위치’를 누르는 것처럼 번거로울 뿐이다. 교수의 강의는 동영상처럼 흘려보내도 그만이다. ‘chat GPT’가 해결해주는 세상이 아닌가. 교수도 이미 그걸 안다. 담배를 피우며 혀를 차봤자 세상은 변했다.      


  학생 이름을 불러 가며 5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학생의 상태를 확인하며 지지부진하게 수업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다. 한 학기가 지나도록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는 학생이 있는 건, 어쩌면 그들을 ‘꾹꾹 눌러’ 새기지 못했음이 아닌가 싶다. ‘터치’와 ‘쓰다듬기’로 작동하는 세상. ‘스치듯 안녕’인 세상이, 서글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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