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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pr 08. 2023

"달, 달, 무슨 달~"이냐고 달달 볶지 말자

  오늘은 17.3일이다. 의 오른쪽에 검은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30일이 되면 전체가 검은 모습일 것이다. 다시 1일부터는 달이 차올라 15일엔 보름달을 보일 거다. 시계로 달의 모습을 알아낸다.

MOON PHASE, G-SHOCK G-9100 GULFMAN

  우리는 평생 의 앞면만 볼 수 있다( 관측에 관해서는 이 영상을 참고 https://youtu.be/huHqXls7SmQ). 은 자신을 향해 소원을 비는 우리의 앞모습과 뒤돌아 걸어가는 뒷모습 모두를 볼 수 있을 거다. 지구에서 의 앞면만 볼 수 있는 이유는 의 자전과 공전 속도가 정확히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우주강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는 의 뒷면을 촬영한 바 있다. 은 자신의 비밀을 들키고 말았다.


  의 뒷면을 촬영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ChatGTP에게 물어보시기를), 을 자원화하려는 국제적인 움직임이 있음을 보면 결국 그것을 완전히 소유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의 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쟁에 관해서는 이 영상들을 참고 https://youtu.be/hoihXSsPwnM, https://youtu.be/SAViVJvdFJk).


  지구에 추락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은 추락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지구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더 멀어지기 전에 달을 차지하려는 걸까( 추락에 관한 여러 가설과 반박에 관해서는 이 영상을 참고 https://youtu.be/VU6VKFiT7m8)?


  과학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 다만, 지구에서는 의 앞면만 볼 수 있음에 관해서 생각하려고 한다. 이 자전주기(자기 삶의 속도)와 공전주기(지구와 관계 맺기 속도)를 정확히 일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나는 지금 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상상하는 중이다). 은 남에게 보이고 싶은 앞면(persona)을 보이면서 자신의 뒷면(personality)은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의 모습은 '한결같음', '변함없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의 한결같음은 우리가 마주하는 한 면만으로 평가한 내용일 수 있다. 만약, 우리지구에서 의 뒷면을 볼 수 있다면, 변했다고 생각할까?


  우리가 바라보는 의 형상이 달라지는 게 그의 성격이 달라졌음을 증명하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의 앞면을 온전히 볼 수도 있고, 일부를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반만 드러난 앞면이 뒷면의 반을 가리지 못했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즉, 그의 가면(앞면)이 깨진 것은 아니다. 그의 가면(앞면)에 그림자가 졌을 뿐이다.


  우리가 보통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오늘 그 사람 좀 이상한데?"라고 말하면, 그건 그의 가면이 깨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면에 그림자가 졌기 때문일까. 가 평소답지 않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고 해서, 그의 뒷면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당하게 흔들리지 않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던 그가 초조해하면서 섣부른 결정을 내리려 한다면 어떨까? 분명 평소 완벽한 가면(보름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모습이 진짜 성격(달의 뒷면)인 것도 아니다. 섣부름과 초조함은 그의 내면(성격)과 사회화된 행동의 중간지대를 나타낼 가능성도 크니까 말이다. 큰 반응 없이 담담하게 지내고 싶은데, 당당하게(보여야 하는) 역할을 맡았을 때,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사실 아무렇지 않은데 당당한 척해야 하니까. 그래서 어떤 행동이든 빨리 내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사람이 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속도와 우리(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진짜 달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언젠가 지치게 마련이다(하기는 천체도 느려지거나 빨라지고,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거나 한다).


  그의 속도가 달라지면 우연히 그의 뒷면을 발견할 수 있다. 정돈된 앞머리카락과 달리 새집 진 뒷머리를 볼 수도 있고, 단정한 옷매무새의 앞모습과 달리 미처 정리하지 못한 뒷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그런 뒷면을 봤다고 해서 굳이 뒤돌아 세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의 뒤로 돌아가서 기어코 "이봐, 이게 뭐야?"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의 모든 면을 완전히 소유하면, 결국 우리는 그를 잃어버리고 말 테니까. 열심히 '자신의 삶'과 '우리와의 삶'을 살아가는 그. 그의 뒤통수를 뒤태를, 약점을 허점을 혹은, 잠자는 모습과 떡처럼 늘어져 쉬는 모습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설령 봤다 한들, 그가 평소 보이는 앞모습이 더 중요하다(물론, 뒷걸음질로 세상을 활보하는 사람이라면 통제가 필요하겠지만).


  의 뒷면을 촬영하고, 에 기지를 세워 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이 지구에서 멀어지거나 지구로 추락하는 것보다 빨리 을 없애버릴 것만 같다. 언젠가 너무 가까워져서 서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헤어지는 것이, 차츰차츰 멀어져 예전만큼 가까운 사이로 지내지는 못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관계 맺기가 아닐까 싶다. 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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