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상고대 사회에서부터 예를 좋아하고 예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삼국 초기에도 전통의 제천 의례(祭天儀禮)에 유교적 국가 의례 제도인 시조묘(始祖廟)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때에는 태학(太學 : 國學)이 성립하고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文廟) 제도를 수용하면서 의례 문화가 향상되었다. 나아가 고려 시대에는 국가 의례가 정비되었으며, 특히 고려 말에 『가례』의 보급이 시작되었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7872).
유교에서 예는 그 근원에서는 형이상학적인 근본 개념으로 이해되면서, 그 실제의 적용은 다른 어떤 개념보다 더욱 구체적인 현실에 관여한다. 주희는 예를 ‘하늘 이치의 절도 있는 문채요, 인간 사무의 본이 되는 행동 규범(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이라고 정의하였다. 실제로 예는 인간 삶의 중대한 일(冠婚喪祭)에서부터 이웃과의 일상적 교제에 이르기까지, 음식 · 의복과 앉고 일어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모든 동작을 규정하는 등, 생활 전반에 걸쳐 핵심적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유교 사회의 통치 기능과 더불어 유교 문화의 특징을 ‘예교문화(禮敎文化)’로 규정짓기도 한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7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