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생 Apr 27. 2023

내 이름에는 ‘용’과 ‘범’이 없다

  한 사람의 ‘이름’에는 그에게 ‘필요한 자질’을 담기도 한다고 들었다. ‘필요하다’는 말은 ‘부족하다’라는 뜻도 될 것 같아, “앗, 그래서 제 이름에 얼굴 ‘용(容)’자가 들어가는군요”라는 농담을 했다.

  내 이름, ‘용호’. 언젠가 한 선배는 내 이름에 ‘용(龍)’과 ‘호랑이’가 모두 있는 것이냐고 물었었다. 물론, 그런 용맹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별명이 ‘용소자’, ‘용호야’와 같은 게 있었는데, 모두 일본 만화책 제목이었다. 발음이 같거나 비슷했기 때문에 불린 그야말로 ‘초딩 별명’이다. 부산 ‘용호동’, ‘용호’가 적힌 레미콘, ‘용호태권도’도 참 많이 봤다. 얼마 전에는 동네 마트에서 ‘용호 종이컵’을 발견한 적도 있다. 참, 흔한 발음이다. 


  얼굴 ‘용’자에 하늘 ‘호’자로 지은 내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스스로 “얼굴이 하늘 만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어릴 적에 ‘가분수’라는 별명이 있었으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용’자가 ‘모습’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는 걸 대학교 입학 후에 알았던 듯하다. ‘중세국어’를 가르치셨던 교수님께서 나에게 ‘이름’에 어떤 ‘한자’를 쓰냐고 물어보셨던 적이 있다. 공부는 못하지만, 맨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괜히 물어보셨던 것 같다. 얼굴 ‘용’에 하늘 ‘호’를 쓴다고 하니 듣자마자 ‘좋은 이름’이라고 하셨다. 왜 그런지 감히 여쭙지 못했는데, 이후에 선배·동기와 이야기 나누면서 아마, ‘하늘의 모습’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리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이름에 스트레스를 좀 던 것 같다. 하지만 ‘중국 사람’을 만나면서 또 다른 사정이 생겼다. 2010년 당시에 대학원에도 중국에서 유학 온 분들이 있었다. 개강 모임을 할 때 중국어로 자기소개를 해 보고 싶었다. 당시 함께 일하면서 공부하던 중국인 동료에게 물었는데, 그는 내 이름을 넣어 ‘我是鄭容昊’(워씨쩡↘롱↗하오↘)를 발음해 주었다. 성조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발음하다가 너무 어렵다고 말하니, 중국에서는 이런 이름을 짓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이름 중에도 중국어로 발음하기 괜찮은 이름이 있지만, 내 것은 완전한 한국식 이름이라는 거였다. 중국에서는 이름 뜻도 중요하지만, 좋은 소리를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개강 후 수업 첫날에는 내 이름을 한자로 써 준다. 베트남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중국 일본에서 온 친구들은 내 이름을 한자로 쓰면 어느 정도 알아본다. 중국 친구 중 몇몇은 웃기도 한다. 그래서 물어보면, 역시 그 친구가 말해줬던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름’은 많은 사람이 불러줘야 좋다고도 하고, 쉽게 부를 수 없어야 좋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이 불러야 세상 살아갈 든든한 관계를 형성할 것이고, 부르기 어려워야 아무나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권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짐작해 본다. 

  내 이름 ‘용호’가 얼마나 많이 불리고, 혹은 얼마나 부르기 어려워질지 모르겠다. 탐탁지 않은 의미, 국제통용에도 석연찮은 이름, 그럼에도 이 이름으로 나는 많은 것을 해 왔다. 그 많은 추억(追憶)과 추억(醜憶)을 모두 담고 있기에, ‘하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해가 쨍쨍한 여름 하늘의 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애착과 집착, 그리고 습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