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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pr 28. 2023

족구

  ‘좋았어, 최선을 다했어!’     


  넘어지면서 다리를 뻗는 나에게 학부장님이 소리쳤다. 결코 잘했다는 건 아니다. 심지어 잘못 차야 득점이 된다.

  족구. 2003년 입학하고서 뭣도 모르고 처음 접했던 구기종목. 97·98학번 선배들과 가장 많이 했던 운동이다. 멋지게 차려입은 선배들이 구두를 신고도 스파이크를 때리면, 여학생들이 환호하고는 했다. 굉장히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자리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제기차기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토스는 물론이고, 공격도 시원찮았다. 몇 번 차 보고 뒤에서 공을 받는 수비 역할을 맡았다. 수비할 때도 제기차기 방식으로 공을 받거나 넘겨야 한다. 너무 높은 공이 오면 머리를 써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 뒤로 밀려났다. 볼보이다. 남자 사람이 귀한 학과여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참여하기는 했다.     


  ‘족어족문학과’라는 말(분명 칭찬은 아니다)이 있을 정도로 선배들은 족구를 많이 했다. 인문대 건물 밑에 족구장이 그려져 있었다. 네트도 설치되어 있었다. 강의실 창문으로 퉁! 퉁! 공차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종종 족구를 잘하는 동기 남학생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이 족구 하러 갔느냐고 묻기도 했다.      


  퉁퉁 공을 차는 소리는 결국 같은 건물을 쓰는 다른 학과의 항의로 몇년 뒤 없어졌다. 물론 맞은편에 있는 사회과학대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경영대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기는 2003년 봄 혹은 가을에 내가 가장 많이 했던 건, 멀리 날아간 공을 주우러 가면서 지나가던 사람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일이었다. 공을 주워주는 사람에게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족구 할 때만 신는 신발도 있고, 족구 공도 따로 있다. 군대에 가면 족구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해군은 선상 갑판에서 한다는 말도 들었다. 불행하게도 논산훈련소에서 서울 경찰서에 전경으로 가버린 나는 족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경찰서에 근무하는 전경이었기 때문에 자리가 협소했던 탓도 있고, 나는 그때도 근력운동에 관심이 있었다. 복학했을 때, 군대를 제대로 다녀온 동기들은 모두 족구를 잘했다. 나는 아예 낄 필요도 없었다. 족구와는 2007년부터 ‘발절(?)’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족구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2023년 봄, 학부 엠티에 들렀다가 학부장님과 다른 교수님, 그리고 남학생들과 족구를 했다. 제대로 군 생활을 하신 교수님들은 실력이 출중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2003년 새내기 정용호 그대로였다. 듣는 말도 똑같았다. ‘세게 차지 마라’, ‘그냥 넘겨!’, ‘달려 달려’, ‘가서 받아!’, ‘뻗어!’, ‘두 다리가 다 떠야지!’      


  학부장님은 학생들의 안전사고를 관리 감독하는 의무 때문에 남으셨다. 그래도 남학생이 많고, 공이 있어서 즐거우신 듯했다. 왜 그토록 열심히 공을 차는 건지, 진짜 이유는 몰랐다. 땀에 흠뻑 젖은 채 “한 게임 더!”를 외치는 학부장님을 뒤로하고, 10시 30분 즈음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우면서도 아쉬웠던 건, 나도 철없는 남자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퉁! 퉁! 공 소리가 멀리 신불산 간월산을 아득히 가득히 울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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