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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08. 2023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싶다

  유리상자의 리메이크 앨범으로 <혜화동>을 처음 들었다. 2005년 8월에 발매되었다고 소개하는데, 그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나는 휴가를 나와서 들었던 듯하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이라는 가사가 특히 좋았다. 흥얼거릴 때도 항상 그 소절만 흥얼거린 것 같다. ‘덜컹거리는 소리’는 선로가 끊어진 틈을 충분히 느낄 만큼으로 달리는 기차에서만 누릴 수 있다. 그 소절을 부르면 일정한 간격으로 토닥여주던 전철과 기차의 손길이 느껴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차 여행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네와 떠난 안동 여행이었다. 가는 길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보이는 간판을 거꾸로 읽거나 재미있는 간판을 찾으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별거 아닌 단어인데 그냥 웃겨서 마구 떠들었다. 예컨대 ‘용호 설비’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걸 읽고 까르르 웃었다.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객차 안에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때 우리나라에 아이들이 많았던 덕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은 기차 속도만큼이나 느긋하고 관대했다. KTX에서는 아이들의 소란에 주의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2005년 5월쯤이었을 것 같다. 지옥 같은 생활실을 벗어나 ‘100일’ 휴가를 떠날 때, 강남 버스 터미널과 서울역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군인’ 하면 왠지 버스보다는 ‘기차’가 어울리는 듯해서 서울역을 택했다. 역에서 타고 갈 차량을 골라야 했다. 당시에는 최첨단이었던 KTX와 낡고 낡은 무궁화호가 후보였는데, 지역별로 지급되는 휴가비(부산 경남은 대략 4만 7천 원 정도가 나왔던 것 같다)로 KTX 요금을 딱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KTX를 선택한 동기 녀석과 달리 나는 무궁화호를 선택했다. 안동 여행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돈 좀 아끼려는 속셈이었을까? 아마도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 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 것 같다.     

  열차표를 끊으려는데, 울산행 무궁화호는 17시가 제법 넘어서야 있었다. 가는 데만도 4시간 남짓이라, 울산역(현 태화강역)에서 구영리까지 이동하면 11시는 넘어야 집에 도착할 것 같았다. ‘그래도 탈 거니, 시커먼 군인아?’라고 묻는 듯한 역무원을 보니, 더욱 고집이 생겨서 무궁화호를 선택해 버렸다. 취소·환불 안내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냥 흘려들었다.      

  역 안에 있는 버거킹에서 ‘갈릭 스테이크 버거 세트’를 먹었다. ‘혼밥’도 ‘버거킹(그렇게 비싼 햄버거)’도 처음이었다. 다 먹고는 역에서 빠져나와 용산 방향으로 걸었다. 이정표에 이태원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흐린 하늘에서 비가 조금 내렸던 것 같다. 흐린 날씨에 어울리게 덤프트럭과 중장비들이 길가에 자주 보였다. 우산도 없이 너무 멀리 가다가는 수상해 보이는 건 물론, 길도 잃을 것 같아서 서울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무궁화호는 과연,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천천히 울산으로 향했다. 객실에 앉아 있으니 허기가 밀려왔다. 기차에서 밥을 먹고 싶은 낭만에 사로잡혀 식당칸을 찾아갔다. 주머니 사정에 맞춰 고르려니 ‘카레 라이스’만 남았다. 점심 메뉴에 힘을 준 탓이다. 선로 방향과 기차 속도에 맞춰 출렁이는 차 안에서 미끄러지는 그릇을 붙잡고 먹었다. 나의 두 번째 ‘혼밥’이었다. 승무원이 나를 안쓰럽게 보는 것만 같았다. 균형을 잘 못 잡는 내가 우스웠던 걸까?     

  서울로 올라갈 때는 무궁화호 출발 시간이 복귀시간과 맞지 않았다. 탈영병이나 미복귀자가 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고속버스를 선택했다. 실제로 9시에 딱 맞춰 복귀하면 욕을 먹고 얻어맞아야 했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나는 KTX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줄곧 고속버스를 이용했다. 허락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도착을 미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00일 휴가는 무궁화호로 서울과 울산을 오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어쩌다 서울이나 근방으로 갈 일이 있으면, 선택지가 KTX밖에 없다. 창밖을 바라보기에도 뭔가 불친절한 속도다. 너무 빨라서 ‘덜컹’거리는 느낌도 희미해진 지 오래다. 공기를 가르며 달려가는 날카로운 소리만 가득하다.      

  이제는 2시간이면 도착하는 서울, 그런 서울이어서 차 안에서의 2시간은 쉽게 ‘빨리 감기’ 돼 버린다. 터치가 생활화되면서 사라진 곡과 곡 사이의 침묵처럼, 기차에서의 시간은 비활성화되어 가는 듯하다. ‘안동’에서 ‘서울’에서 ‘울산’으로 돌아오던 기차 안의 ‘충분한’ 시간이 그립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았던 ‘시간의 충만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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