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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15. 2023

선생 아닌 선생을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입니다.

부족한 저에게도 많은 분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분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동을 전합니다.


제가 처음 누군가를 가르친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본래 다문화 가정에 한글 교육을 나설 목적으로 모교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습니다. 다만,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역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아동들에게 방과 후 학습을 도와주는 활동을 했습니다. 가정 여건이 풍족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제가 제공했던 것은 사실상 학습이 아니라, 놀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네를 잘 밀어주는 선생님, 양팔에 매달리게 해 주는 선생님으로 지냈습니다. 땀이 흠뻑 젖었지요.


2010년에는 중고등학생이 이용하는 청소년 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10회 정도 했습니다. 그 수업에서도 저는 그렇게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글쓰기에 흥미가 없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마찬가지로 여러 모로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탁구를 했죠. 글짓기를 하라고 나눠준 종이에 낙서를 해도 좋고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면 욕을 써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오히려 글을 쓰는 친구들이 있었지요. 나중에 정이 든 친구도 몇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그런 자원봉사 선생님이었던 저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없겠지만,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한 일을 했습니다. 시간강사로 대학교 글쓰기 강의를 몇 개 맡았던 것이지요. 그때는 패기가 넘쳤습니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고 지나치게 소란스러운 학생에게는 당장 나가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29살 패기(?) 넘치는 가부장적 남성이었습니다. 보고서를 발표할 때는 독설을 아끼지 않았지요. 아내와 연애할 때, 이런 교육방식을 두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 HOPE라는 탈북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저는 뜻깊은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및 국제 문제에 관한 내용으로 이런저런 글을 읽고 토론도 하고, 써온 글을 첨삭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야가 넓어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자라, 대한민국에서 돈을 벌어 먹고사는 저에게 북한이라는 곳을 벗어나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청소년의 관점은 분명 객관적이고도 개방적인 사고였던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의 경험도 풍부했던 그 친구에게 제가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2018년부터 외국인 유학생을 맡았습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유학생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글을 나누는 일 자체가 저를 더 성장시켰습니다. 그들은 외부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에 관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동안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족에 관한 뉴스를 더 자주 접하게 되었고, 또 그에 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공부했던 '여성주의 철학'대한민국 내에서의 권력의 소수인 '외국인 유학생'을 만나면서 비로소 경험으로써 완성되는 것을 느꼈지요.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계약을 이어오고 있는 이 자리가 저에게는 여전히 큰 배움의 장입니다. 지금도 그들에게 말하지만, 외국어 하나 변변하게 할 줄 모르는 저에 비해, 모국어에 한국어까지 할 줄 아는 그들이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부족한 제가 그들에게 전하는 내용은 작지만, 그들에게서 얻는 건 무한하지요.


2020년부터 몇몇 도서관 강의에도 인연을 맺으며, 중장년 분들께 다양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그분들의 인생에 비할 수는 없으니까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신 분이든, 고학력에 좋은 직장까지 다니신 분이든 할 것 없이,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나 인생을 살아낸 진짜 선생으로서 그분들을 마주하면 제가 부족함을 절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더 열심히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그 경험을 추체험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학과 사무실에서 뵙는 조교들과 근로 학생으로 일하는 학부생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주어진 일에 관한 책임감에 놀랄 때가 많고, 저로서는 알지 못하는 건강한 생각과 긍정적인 마음이 그곳에 가득합니다. 그렇게 알고 지내던 분들도 졸업이나 계약 만료를 이유로 떠나갑니다. 그중 생각나는 분들이 있는 건, 제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시시한 농담이나 건네다 내려가는 저를 좋은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그분들도 사실, 저에게 선생님이기 때문이겠지요.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에 값비싼 선물이 오가는 장면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카네이션도 다수를 대표해 한 송이만 전달하는 풍경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물로는 전할 수 없는 진심들이 지금 저의 전화기를 매개로 오갑니다. 요즘 젊은 사람은 공경과 감사의 마음이 덜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과연 그럴까요? 어쩌면, 그렇게 시대를 비관하고 세대를 비판하던 저 같은 사람이야말로 배움이 필요한 학생이 아니었을까요? 2023년 스승의 날, 부족한 저를 선생이라고 불러주며 인사 건네는 그들에게서 또 한 번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들의 큰 세계를 마주합니다. 한눈에 담을 수 없는 그들의 세계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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