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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10. 2023

우로보로스 앞에서 울어버렸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들

  오랜만에 논문을 투고했다. 최초로 공동집필을 한 논문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같은 학회에 가입한 터라 논문집을 받아본 학부 교수님이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작가가 아닌 학자에게는 문장이 뛰어나가, 전개가 훌륭하다는 말보다, (연구 주제가) 흥미롭다, 수고했다 정도가 대단한 칭찬이다.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그 뒤에 덧붙인 말이 신경이 쓰였다. 

  2장 2절의 제목이 이상하다는 것. ‘영상 이미지’라는 구를 사용하는 그 제목이 교수님의 눈에 거슬린 것이다. ‘디카시’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데, ‘영상 이미지’라는 제목이 붙으니 틀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진’을 논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는데, ‘영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오류이다.

  심사위원 한 분이 기존에 작성했던 2장 2절 제목이 부정확하다고 하면서, ‘영상 이미지에 나타난 의미’ 정도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심사평을 내놓았다. 사실, ‘박사학위씩이나’ 받은 사람이라면, ‘납득이’라도(?) 데려와서 반박했어야 했는데, 나머지 8개(!)의 지적 사항을 처리하는 게 시급했기에, 제목에 관해서는 의견을 받아 그대로 고쳐버렸다. 처음 다루는 연구 주제이기에 심사위원의 평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딱히 잘못된 표현은 아닌 것 같아 수용했다. 그런데 학부 교수님이 그 제목이 오류라고 하신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기뻤는데 이미 출판된 논문의 얼굴에 오점이 남은 것 같아 불편했다. 함께 집필한 선생님께도 죄송한 마음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표준』)에 접속했다. 냉정해지기 위해서는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영상’은 “빛의 굴절이나 반사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 물체의 상(像)”이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모습이나 광경”, “영사막이나 브라운관, 모니터 따위에 비추어진 상”으로 풀이한다. 마지막 풀이가 바로 ‘영상’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의미로 보인다. 텔레비전, 영화관, 스마트폰 등으로 시청하는 그것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과 관련한 ‘시각적인 형상’이 ‘영상’의 전체적인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동영상’이라는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나 싶어 또 찾아본다. “『영상』 컴퓨터 모니터의 화상이 텔레비전의 화상처럼 움직이는 것. ≒동화상”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동영상은 결국 움직이는 화상인데, 동영상은 영상의 하위 개념으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컴퓨터의 화상이 텔레비전 방송처럼 움직인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카메라로써 빛을 포착한 상이 아닌 픽셀로 만들어낸 상이 움직이는 조건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는 ‘동영상=영상’으로 일치시켜 사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2장 2절의 제목을 틀린 표현으로 작성하였거나, 사진을 다루는 본문과 관계없는 과도한 제목을 붙여 놓은 꼴이다. 

  그럼, ‘사진’은 무엇인가?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체로부터 오는 광선을 사진기 렌즈로 모아 필름, 건판 따위에 결상(結像)을 시킨 뒤에, 이것을 현상액으로 처리하여 음화(陰畫)를 만들고 다시 인화지로 양화(陽畫)를 만든다”라고 풀이된다. 여기에서 나는 헷갈린다. 사진은 영상의 하위 개념으로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영상이다. 다시 말해, ‘빛’이 만들어낸 ‘형상’을 인화지에 포착한 물건이 사진이다. 

  사진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문학』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심상”, 심상은? “문학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이미지, 표상”, “심리 이전에 경험한 것이 마음속에서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상”이란다. 그런데 『표준』만으로는 뭔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말샘’으로도 찾아본다. “사상(事象)을 시각적으로 매체에 정착시킨 것. 다만, 여기서 발전한 문자는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한다. 시각적으로 매체에 정착시킨 것이다. 인화지든, 필름이든, 디지털 화면이든, 심지어 그것이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일단 시각적으로 매체에 정착시킨 것은 이미지다. 따라서 ‘이미지’는 ‘사진’, ‘회화’와 같은 구체적인 대상은 물론이고, 머릿속에 떠올리는 시각적인 것 모두를 포함하는 최상위 개념으로 보인다.

  ‘이미지’의 다른 말이라고 하는 ‘표상’은 “본을 받을 만한 대상. =본보기”, “추상적이거나 드러나지 아니한 것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냄”, “문학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심상”, “심리 외부 세계의 대상을 마음속에 나타내는 것”, “철학 지각(知覺)에 의하여 의식에 나타나는 외계 대상의 상(像). 직관적인 것으로 개념이나 이념과 다르다”라고 한다.

  이렇게 한참을 찾고 나니, 2장 2절의 제목이 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요컨대, ‘영상’은 ‘사진’과 ‘영화’, ‘동영상’을 포함하여 ‘빛’으로 ‘형상’을 표현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최상위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영상은 그중에서 움직임이 있는 것만을 가리킨다. 따라서 영상이라고 했을 때 첫째, 사람들이 비디오를 떠올릴 수 있다. 둘째, 제아무리 영상이 사진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사진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으면서 영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논의를 확장해버리는 일이기에 부적절하다. 이렇게 하고 나니, 그나마 내가 틀렸음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음에 다행을 느낀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학교 도서관에 자주 다녔다. 친구가 없던 탓도 있었지만, 혼자서 철학용어(개념어?)사전이라는 크고 두꺼운 책을 뒤적이면서 노는 걸 좋아했다. 공강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초등학교 때 손정일 선생님께서 5학년 때 국어사전 찾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심지어 운동도 잘 하시던 선생님께서 국어사전에서 단어를 순식간에 찾아내는 시범을 보이시는 게 너무나 멋졌다. 나는 당장 국어사전을 사달라고 했었고, 열심히 사전을 읽으면서 놀았다. 대학생 때까지도 그 사전을 쓰다가 너무 낡아서 버렸다. 전자사전을 사서 쓰는 게 유행하던 때라 종이사전은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다시 구매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검색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편하게 제공되는 탓인지, 필요한 정보가 있어도 정작 ‘사전’을 찾는 일은 줄어드는 것 같다. 심사위원이 제안한 제목을 무턱대고 받아들인 것도 그 탓인지 모른다. 심사위원은 내 글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니까, 그 말을 수용했다. ‘불혹(不惑)’인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2023년 5월의 1984년생은 학부 교수님의 지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2장 2절은 ‘용두사미’이거나, ‘용인 척하는 뱀 꼴’이 되어버렸다. 사전에 사전을 좀 찾아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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