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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27. 2023

순응적인 삶의 흔적들

  요즘이야 <칭찬 스티커>나 <상점, 벌점> 제도가 수시로 진행되기에 '상장'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시상식이 학기나 학년을 마무리하는 큰 행사로 여겨졌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에 이어 조회대 위로 올라가서 상장받는 친구를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큰 건 아니지만, 나도 상장을 많이 받았었다. 교련 성적 우수상은 지금 보면 정말 우습다. 표창장도 몇 장 받았는데,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어머니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남아 있는 건 저게 전부다.


  자격증도 열심히 따려고 노력했다. 당시 이름으로 워드 2급이랑 컴활 2급을 받았다. 1급까지는 아직 필요 없다던 <국민 컴퓨터 학원> 원장님 말씀을 따랐던 것 같다. 90년대 후반에는 컴퓨터 자격증이 대단히 유행했는데, 부모들은 너도나도 컴퓨터 학원에 보냈다. 아이들이 많았던 그 시절에는 학원 수입이 제법 짭짤했을 것이다.  2016년 이후 'AI'나 '드론' 같은 4차 산업 자격증이 유행하던 것처럼, 저 때는 워드 잘하고 엑셀, 파워포인트만 잘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겼다. 심지어 포토샵도 잘하면 좋다고 해서 조금 배우다가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그만두고 말았다.


  사실, '자격증'이나 '상장'은 하라는 대로 잘하는 사람은 받을 수 있다. 얼마나 수동적으로 잘 살아왔느냐를 증명하는 증거라서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경찰서와 경찰청에서 받았던 표창장을 보면... 때리면 맞고, 혼내면 군말 없이 뉘우치고, 그게 나쁜지 좋은지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악습이면 악습대로 지키면서 자부심을 느끼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바라보면 괜히 서글퍼지고 심지어 부끄럽기까지 한 종이들.


  그렇지만, 저것이 나의 철없던 시절을 기억하는 작은 단서임에는 분명하다.


  아들이 받은 상장이 이래저래 열두 장이다. 벌써 열두 장이나 받았다는 게 놀라워서 칭찬하다가, 아빠 상장도 꺼내 보였던 거다. 아들은 이런저런 글자를 읽어 본다.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모양이다. 사실은 숫자를 세는 게 더 재미있었겠지만. 어쨌든 뭔가 함께 볼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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