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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30. 2023

각수의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오신 날에 절을 가는 건 몇 번 안 된다. 십 년쯤 전에 어머니와 버스 타고 같이 간 적이 있었다. 그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 맞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토록 북적였던 걸로 봐서는 맞는 듯싶다. 

  부처님 오신 날이 토요일이다. 대체 공휴일을 챙겨 주었다지만, 그래도 당일에 즐겨야지 싶어서 절에 갔다. 날은 맑았다. 밝았다. 더웠다. 사람은 대단했다. 아내와 아들을 절 입구 근처에 먼저 내려주었다. 주차하려고, 절에 들어서는 데만 십몇 분이 걸린 듯하다. 들어오고 나서 주차 자리가 날 때까지 또 몇 분이나 기다렸다. 안내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차관리 요원의 당부를 어기고 무작정 자리를 찾아가는 사내도 있었다. 마음을 비우러 오는 날인데, 자리 욕심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먼저 들어간 아내와 아들을 찾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절 건물에 들어서서 아내를 만나 불상에 절을 하고, 장인어른 위패를 찾아가 절을 올렸다. 아들도 절을 곧잘 한다. 내가 사찰에서 삼배를 올린 게,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부터다. 그전까지는 삼배를 올리지 않았다. 수계를 받아 ‘각수(覺樹)’라는 법명까지 받은 사람이 절을 하지 않는다니, 완전 땡보살(?)이다. 


  절에서는 거창한 공양을 따로 하지 않았다. 대신 지역 상인이 참여한 듯 보이는 먹거리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천 원에서 3천 원 사이의 교환권을 구매해서 그걸로 사 먹는 방식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남은 현금은 6천 원. 그래도 한번 가 보자고 들렀더니 입구에서 주먹밥과 조미 김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3명이니까 3개. 이거면 다른 음식과 함께 충분히 식사가 될 듯했다. 부추전, 떡볶이, 컵라면, 팥빙수, 핫도그, 꽈배기, 음료수 들이 있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꽈배기, 아내와 내가 반찬 삼아 먹을 부추전을 시켰다. 4천 원이다.

  아내는 부추전을 받아서 먼저 자리로 갔다. 아들과 나는 꽈배기를 받으러 왔다. 앞에서 한 커플이 꽈배기와 팥 도너츠 값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쿠폰이 모자라서 현금을 내밀었던 모양이다. 판매하는 분이 설명했고, 남자는 급히 교환권을 구하러 갔다. 판매대를 보니 꽈배기가 없었다. 

  나는 2천 원짜리 쿠폰을 들고 있던 아들에게, “어, 꽈배기 없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앞에 있던 여자분이 우리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도너츠를 튀겨내는 분께서는 꽈배기 나옵니다고 말했다. 없다고 실망해서 돌아갈 폼이었거나, 없어서 울어버릴 것 같은 폼이었거나 둘 중 하나였지 싶다.

  억지가 아니었던 게, 앞의 그 여자분이 아들에게 “꽈배기 줄까?”라고 묻는다. 얼어 있는 아들을 대신해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아뇨, 저희 먹기에도 많아서 그래요” 하신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계속 “줄까? 먹을래?”라고 묻더니, 결국 종이봉투 하나를 집어 그 안에 꽈배기 두 개를 넣어 준다. 아들에게 감사하다 인사를 올리라고 했다. 아들은 봉투를 든 채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처음 뵙는데, 이렇게 폐를 끼쳐서 어떡하죠? 죄송합니다.”

  진심이었다. 누가 봤다면, 완전 진상이었을 것 같다. 완강히 거부하자니 아들을 향한 그분 눈빛이 정말 지긋했다.

  “아니에요, 좋은 날이잖아요. (아들을 보며) 맛있게 먹어.”

  “언제 뵐지 모르지만, 꼭 신세를 갚겠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 쿠폰을 사러 갔던 남자가 돌아왔고 값을 치르고 유유히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뭔가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었다. 

  2천 원에 3개. 그중에서 2개를 우리에게 주었으니, 그 커플은 꽈배기 1개만 가지고 간 셈이다. 그리고 주문했던 우리 꽈배기가 나왔다. 5개의 꽈배기를 봉투에 담고 아내에게 와서 이야기를 했다. 아내도 놀랐고, 우리는 배가 너무 불렀다.


  음식물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먹고 깨끗하게 쓰레기를 모아 출구 쪽 테이블로 향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에는 주먹밥이 가득했다. 

  부처께서는 걸식 생활을 할 때, 문전박대도 원망할 일이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를 나눠준대도 나무랄 수 없다고 했다. 얻어온 음식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날의 끼니를 해결하되, 결코 남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베풂이 이미 한량없는 것이기에 가려서 먹을 게 아니었던 거다. 절에서 준 주먹밥이 내가 보시한 값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너무 보잘것없었던 것일까? 차라리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냥 그대로 가져가서 하다못해 길고양이에게 주었다면 어땠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 오신 날. 주차장에서부터 공양 장소를 벗어날 때까지 중생의 어리석은 욕망을 본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를,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치워야 하는지를 모르는 중생으로 가득한 이곳. 거대한 부처가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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