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 늘 앉아 있는 주제에 꼰대 소리는...
축제 기간인지, 아침 수업 가는 길이 천막을 설치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소품을 잔뜩 준비하고 있었다. 5월이니 대학 축제 기간인가 보다. 중앙 정원이 조성되기 전에는 축제라고 해도 이토록 번잡하지는 않았는데, 정원이 조성된 이후로는 천막을 설치하는 공간과 사람들이 이동하는 공간이 겹치면서 더욱 혼잡해졌다. 그마저도 코로나 이전에는 견딜 만했지만, 2년 동안 대면 행사가 없었던지라,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예전에 인문 사회 경영대학 건물 앞 광장은 말 그대로 광장이었다. 텅 빈 광장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니고, 가운데에서는 캐치볼이나 족구를 즐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의 안면이나 뒤통수를 가격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또 그렇게 지내는 게 낭만이라면 낭만이었다. 물론, 그런 일을 즐기지 않는 소수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그리고 교수권과 수업권이 침해당한다는 불만이 접수되면서 이 텅 빈 공간에는 네모난 돌덩어리가 들어섰다가, 급기야는 직사각형의 중앙 정원이 조성되었던 거다. 소나무를 심고 가운데 인공 오솔길을 만들어 주변에 벤치를 설치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앉아 쉬기에는 그만한 장소가 없었지만, 활기가 사라진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재미있는 모양이다. 수업하고 있는데 호객을 위한 고함인지, 스스로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소리인지가 들려왔다. 호객 행위라고 해 봐야 “여기 와서 이것 좀 해 보고 가세요”라는 패턴이다. 아무래도 ‘타인’과 ‘나’를 철저히 구분하는 듯한 느낌이다. 생판 남에게 권하는 것을 넘어설 수 없다. 옛날 같으면 정말 모르는 이성(異性)의 팔을 잡아끄는 일도 있었을 테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식으로 들이밀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거리가 멀어지고, 끈과 줄이 사라진 시대에 할 수 있는 축제라는 게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궁금하다. 사람 사이에 끈과 줄이 있던 시대에도 축제는 사실 비슷한 모습이었다. 연예인이 오는 저녁 행사에만 관심이 많고, 학생들끼리 나누는 행사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이른바 학생회와 집행부끼리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그것을 즐기면서 그들끼리 신이 나곤 했다.
“여기 와서 이것 좀 해 보고 가세요”라는 외침이 어디를 향하는지 궁금하다. 그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외쳤는가도 궁금해진다. 나의 열정 때문이었을 리는 없고, 선배들의 열정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아마 내가 그런 시절의 거의 끝물이었던 것 같지만, 선배들은 늘 이른바 ‘조직’을 강조했다.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 물론 효과가 있었다. 즐기는 수준에서는. 그러나 언젠가부터 부담이 늘어나다가 결국 떠나간다. 그렇게 떠나간 친구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인문 사회 경영대 광장에서 족구를 하고, 모르는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시대에나 어울리는 열정인 듯싶다. 모든 열정이 앉아 있는 시대. 강의실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도서관 의자에 앉아서 교과서와 인강을 파고들고, 카페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이나 스마트 기기로 공부와 휴식을 병행하는 시대의 열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중앙 정원 벤치도 지성인답게 휴식을 취하라고, 축제도 차분하게 진행하라고 근엄하게 말하는 듯하다.
연구실로 향하는 길. 공허한 외침이 캠퍼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문득, 텅 빈 천막에 홀로 남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청년이 보인다. 그의 세상은 그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신나는 축제 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