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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n 03. 2023

우정은 우울한 삶에서 영근다

"내가 절친(베프) 아니냐"라고 말하던 친구에게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고 말하고, "내가 싫으냐"라고 묻는 친구에게 "응 싫어"라고 말해 버리던 남자애는 결국, 친구가 거의 없는 남자이고 말았다.

솔직히 그때는 "친하다"라는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친하다, 친구다, 우정이다는 판단이 두려웠다. 친하기 때문에 장난을 치다가 다치게 만들기도 했고, 친하기 때문에 충고랍시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친구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친구로 지내고 싶던 사람들도 떠나보냈다. 실수였거나 의도였거나, 결국 끝은 이별이었다. 병영 언어 예절 강의에서 내 친구도 이 부대를 나왔다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지금 나와 전혀 닿아 있지 않다. 모두가 추억 속에 있는 존재들이다. myth or miss


몇몇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사랑과 우정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물을 때 '우정'이라고 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우정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친구들을 외면하고 있을 때조차, 친구들은 비웃고 욕하면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존재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당연히 우정보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게, 스무 살의 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정'이란 '기쁨'보다는 '절망'과 '슬픔'을 나누는 감정이자 행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기쁨과 즐거움만을 나누던 친구들은 지금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기쁨과 즐거움 사이에 내보이는 우울과 고통이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우울과 고통은 주로 나에게서 분출되었고, 그렇기에 나만 따로 떨어져 나오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우울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주고받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즐겁게 절망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던 사람들만 내 곁에 남아 있다. 물론,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그러나 즐거운 소식으로 희희낙락하 보내던 동기들과는 아예 연락하지 않는다. 할 방법도 없다. 연락처도 모른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앞에서 말했듯, 그들은 나의 우울(내면의 괴물)을 받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참된 우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일은, "색인관계"(밥 친구, 술친구, 카톡 친구, 인스타 친구 등)가 유행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무의미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울하고 슬프고 절망적인 감정을 털어놓는 친구에게 '너도 좋은 이야기를 좀 해' 보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우울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이렇게 해 보자 고민하다가 어느 날 친구가 밝게 웃으며 즐거운 소식을 전해줄 때 "그래! 그것 참 잘 됐다!"라고 맞장구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답답했던 속마음은, 그 순간, 그토록 크게 외치는 목소리에 '야! 너 지금까지 좋은 이야기 한 번 안 해주더니, 이렇게 들으니까 정말 좋다!'라는 고백으로 충분히 담을 수 없을까?  


고단한 인생이다. 기독교와 불교가 종교인 이유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유랑하던 이스라엘들과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중생들의 이야기가 현재 우리의 삶과도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우정'은 고난을 나누는 감정으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신조차도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자신과의 우정을 어기지(의심하지) 않아야만 사랑을 베풀지 않는가. 그것이 우정이다.


함께 웃고 떠들며 노래하고 춤추기만 하던 이들에게서 '우정'이라고 말할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적어도 나는 의심스럽다. 지금 당신 곁에서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우정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아지지 않아도 싫증 내지 않고 격려하는 그 사람이 어쩌면, 당신의 진실한 우정인지도 모른다.


우정은 웃음으로 싹트고 자라지 않는다. "보잘것없는 나와 함께 해줄 수 있니"라는 수줍은 고백으로 싹트고, 서로의 우울한 시절을 격려하며 자란다. 꽃이 지지 않으면 열매도 씨앗도 없듯이, 깔깔거리며 웃을 때 우정은 자라지 않는다. 친구 앞에서 애써 웃지 말자, 그래도 참된 친구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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