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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n 09. 2023

백수(白手)의 왕

  “어, 사장님 회사 다녀요?”     


  며칠 전,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 배웅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르는데, 공동현관문으로 3층 아저씨가 나오시기에 인사를 하고 출발했다. 그때, 황급히 나를 부르셨던 모양이다. 이미 출발해 버린 나를 어쩔 도리가 없었는지, 아내를 붙잡고 말했단다. 사장님 회사 다니시느냐고.

  근래에 아내를 붙잡고 많은 분이 물었던 모양이다. “남편분 뭐 하세요?” 아침에도 보이고, 낮에도 보이고, 저녁에도 보이고, 밤에도 보이는 남자. 때로는 외출하는 듯, 때로는 자다가 나온 듯 보이는 옷차림으로 건물 사이를 활보하는 나의 정체가 대단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일은 안 하나?     


  우리 아파트에서 나는 ‘차 닦는 남자’다. 지금은 집착을 버려 매일매일 닦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세 번 평일 아침 6시 30분이나 7시 즈음에 내려가서 한 시간 남짓 차를 닦고 올라온다.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지켜보는 건 어쩐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야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출근 시간이 들쑥날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오늘 아침에는 다행히(?), 적어도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열심히 차를 닦고 있는 나를 중학생이 지나가고, 인근 공장으로 출근하는 분들이 지나친다. 시동을 걸고 황급히 출발하는 사람들. 문득, 내 뒤쪽에 주차한 차의 아주머니께서 남편을 향한 불만인 듯 혼잣말로 “뭔 차를 이렇게 더럽게 쓰는지 몰라”하면서 걸레를 꺼내 쓱쓱 닦았다. 등교를 위해 당신의 아들이 곧장 뒤따라왔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아침 7시 15분부터 8시 30분까지 차를 닦던 나를 보며, 괜히 닦고 싶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차를 닦을 때마다 3층 할아버지를 마주치곤 했는데, 오늘은 만나지 않았다. 3층 할아버지는 차를 자꾸 닦다가는 구멍이 난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지실 뿐,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으시는 듯하다. 작년에 일찍 퇴근하는 나와 몇 번 마주칠 때마다, 왜 이렇게 일찍 오느냐고 하셔서, 일이 별로 없어서요라고 했던 적은 있다. 그때 말씀이 “그저 일이 많아야 햐, 그래야 나라도 잘 산다”였으니, 그저 이 놈 일자리가 시원찮다고 걱정하셨을 수는 있겠다. 

  아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도 아주머니들이 궁금해했던 것 같고, 아내와 친하게 지내는 동생도 ‘남편은 박사’라는 아내 말에 화들짝 놀랐다고 하는 걸 보면, 나는 ‘그저 그런 남자’ 말 그대로 ‘미남(未男)’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던 거다. 그러고 보면, ‘미남’이라 자칭한 나는 역시 ‘나’를 잘 안다.      


  차를 닦는 남자. 전임이 아니기에, 여기저기 강의 하러 다니는 남자에게 차는 옷이고 명함이고 손질한 머리카락 잘 닦은 구두와 같다. 아니, 나의 육체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닦는다. 9시에 출근이라면 7시에 나와서 닦는다. 결코, 노는 중이 아니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은 월급과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2년 3년에 한 번씩 자가든 리스든 렌트든 차를 바꿀 때, 나는 10년 15년을 타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여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니 재미있다. 여유가 있거나, 여유만 있거나. 여유를 만드느라 여유 없는 사람들보다는 나으려나? 보이는 게 다인 세상에서 그들은 나의 여유 없음을 결코 보지 못할 테니, 그건 조금 서글프다.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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