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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n 05. 2023

+자신감, -자신감

도대체 어떤 '나'를 믿는 감정인가

  자신감 없는 아이였다. 유아원에 다닐 때 사진을 봐도 수줍어하고 위축되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봐도 다르지 않다. 잔뜩 화가 난 듯 어두운 얼굴은 성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질 수밖에 없지만 지고 싶지 않았고, 부족하지만 넉넉해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타났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불안한 입술이 정용호라는 아이의 본성을 나타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 친구 한 명이 권투 글러브를 가져왔다. 그래서 체육 시간에 그걸 끼고 씨름장에서 스파링한 때가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굳이 조금 잘 치는(?) 친구를 붙였다. 나는 권투는 고사하고, 당시에 태권도장조차 다니지 않았기에 아예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주눅이 든 상태였다. 멀뚱히 서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자세를 잡고 섰다. 시작! 눈 깜짝할 사이에 친구의 주먹이 내 얼굴을 때렸다.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누구 앞에 서서 말하는 것도 극도로 두려워했다. 학예회 등을 준비하면서 단체 안무와 태권도 품새를 외웠던 건, 자신감이 없어 수동적이었던 탓도 있지만, 속으로는 ‘나도 저렇게 멋져 보이고 싶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듯하다. 심지어 무엇이든 참여해야 했던 시절이었고 말이다.

  대학생 때는 노래 부르는 소모임에 가입했다. 가입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궁하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나 같은 사람도 영입 대상이 되었다. 고음도 못 내고, 기교도 없었는데 ‘그게, 용호 노래의 매력이다.’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한번은 태화강 변에 있는 한 절에 갔다가, 근처 놀이터에서 선배들과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정확한 과정은 떠오르지 않지만, 자신감을 길러야 한다, 이런 곳에서 노래를 부르면 못 할 것이 없다는 식의, 온갖 말이 마중물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도 자신감이 없어 당연히 수동적이었던 나는 동네 아이들이 놀고 주민들이 지나다니는 그곳에서 배에 힘을 주고 두 번이나 노래를 불렀다.      


  타인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혹은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미래의 자신’에 이끌리면서 행동했던 것 같다.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수동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건 군대부터였다. 군대는 나를 병들게 했지만, 변하게도 했다. 변화가 곧 병듦이었을 테지만, 아무튼.

  비 오는 날 방독면 훈련을 위해 천막 아래에 모인 무리에게, 교관은 노래 한 곡 뽑는 훈련병에게 방독면 쓰기 실습 면제를 약속했다. 방독면 쓰기도 싫고, 스트레스도 풀고 싶어서 손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약속은 지켜졌고, 스트레스도 풀렸다. 대형 면허 교육 수료식 때 대표로 발표할 사람 있느냐 했을 때, 손을 번쩍 들고 앞에 나가 발표했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었고, 더운 여름 누가 나서지 않으면 계속 서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간 거다. 두 번 모두 박수는 받았지만, 노래가 훌륭해서도 아니었고, 발표가 짜임새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앞에 나섰다는 그 사실 때문에 박수를 받았다. 나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자신감 있는 사람처럼 평가받았다.

  예비군 훈련을 갔을 때도, 민방위 훈련을 갔을 때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갔을 때도 열심히 나 자신을 보였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생각하지 않고 ‘예비군이면서’ 열심히 포복하다 팔꿈치가 까졌고, 온갖 사격 자세를 각 잡고 따라했다. 누구보다 빨리 방독면을 쓰고 벗었다. ‘민방위이면서’ 진지하게 마네킹 흉부를 압박하며 땀을 흘렸고, 완강기를 타고 2층에서 내려왔고, 가상의 화재 현장을 빠져나왔다. 키즈노트로 보내온 영상에서 봤던 아이들처럼 ‘아무개 이겨라’를 연신 외쳐대며 무슨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게 놀았다.      

  잘 모르겠다. 오은영 박사도 서천석 박사도 스님도 신부도 목사도 아니니 알 수 없다. 그래도 ‘자신감’은 ‘칭찬이나 격려’ 따위로 생기거나 자라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물론, 그런 사람이 진정한 자신감을 지속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이 반드시 ‘자신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신감(自信感)’은 말 그대로 ‘나’를 믿는 감정이다. 그 ‘나’는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떤 ‘나’든 상관없다. 다만, ‘누군가 인정하고 제시하고 바라는 나’여서는 곤란하다. 그런 경우, ‘나’는 타인이 설정한 값으로서 ‘나’일 뿐이다. 남들이 인정하고 제시하고 바라는 나의 모습을 믿었다가, 우연히 날것 그대로의 나를 마주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인정할 수 있고, 내가 믿는 범위의 ‘나’여야만 한다. 그 ‘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도 있고 충분한 부분도 있는 ‘나’다. 그런 ‘나’를 믿는 일이 진짜 ‘자신감’인 것 같다. 그럴 때, 잘하는 것은 당당하게 잘한다고 말하고, 못하는 것은 당당하게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진짜 ‘나’를 ‘믿는’ 감정으로서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설령, 못하는 것인데 당당하게 나섰다가 실패하더라도, 나는 원래 그 부분은 부족하니까 라고 시원하게 인정하고 털어버릴 수 있다. “아, 역시 안 되네!”라고 말이다.     


  나는 어떨까, 나는 다혈질에 과강(過强)인 사람이다.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또 화를 내고 융통성 없이 행동한 ‘나’를 시원하게 비판하면서도 격려할 수 있다. 요즘은 ‘자신감’이 좀 떨어진 것 같다. 주변을 의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약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서? 머리가 복잡하다. 심란하다. 다시 계절을 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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