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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n 04. 2023

3층의 풍경

모두의 아들, 모두의 손자

  3층 3호에 갔다. 아들도 함께 갔다. 아내도 다녀오라고 했다. 의기양양 슬리퍼를 신고 따라나선다. 계단으로 가자는 아들에게 슬리퍼는 위험하니 엘리베이터를 타자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려서 그 안에 몸을 싣는다. 긴장되지 않느냐고 했다. 괜찮단다. 아빠는 긴장된다고 말했다. 왜냐고 묻는다. 처음이니까 떨린다고 했다. 3층에 도착하는 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초인종을 누르고 가만히 기다린다. 3초는 흐른 듯하다. 안 계신가? 했는데, 어렴풋이 할아버님 소리가 들린다. "몰라, 경비실인가"라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할아버님이 나를 보다가 밑에 아들을 보고는 정말 활짝 웃는다. 어서 들어오라고 하신다. 인사만 드리고 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들어왔다가 가라고 하신다. 뒤에 할머님도 그렇게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안 들어가면 서운해하실 듯했다. 그래도 아들의 표정을 좀 살폈어야 했는데. 소파에 앉은 아들을 보고 옆에 앉은 할아버님이 너무 귀여워하시는 통에 아들이 긴장을 해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여기 있는데 괜찮다고 조금만 있다가 가자고 했다. 무릎 위에 앉혔더니 안겨서 엉엉 운다. 당황하신 할아버님은 결국 아들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정면을 응시하실 수밖에 없었다.

  할머님은 음료수와 빵, 쌀과자를 가져오셨다. 소금빵이라고 했더니 아들이 잘 먹기는 한다. 그래도 울상이다. 할머님은 왜 우느냐고 물어보고, 그럼 또 더 울먹이고 한다. 나의 어릴 적이다. 울보.


  그동안 방풍나물이며, 감자며 이것저것 얻어먹은 게 많았다. 문 손잡이에 몰래 걸어두고 내려가신 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밀양에서 선물 받은 양파가 너무 많아 3층 할아버님 댁에 나눠드리려던 참이었다. 혼자 다녀오려 했는데, 아들이 같이 가겠다고 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 

  인사를 잘한 탓도 있었겠지만, 아들을 볼 때마다 환히 웃으시고 머리를 쓰다듬고 하신 건, 할아버님 할머님께는 손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1남 4녀의 자녀들이(1남을 얻기 위해 4녀씩이나 둔, 그야말로 옛날 분들이다) 다들 결혼은 했지만 자녀를 두지 않는 모양이다. 특히 '귀한 막내아들'이 자녀는 갖지 않고 개만 키우고 있으니 할머님은 속상하신 모양이었다. 할아버님은 시대가 그런 걸 어찌하냐고 하신다. 이럴 때 보면 남자들이 훨씬 진보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게 신기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아이를 보면, 남의 아이임에도 예뻐 어쩔 줄 모르신다는 거다. 

  3층 4호에 사는 할아버님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아내가 소일하러 오전에 외출하면, 그 뒤로는 강아지를 안고 밖에 나와 멍하니 앉은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고 하셨다. 차량 운행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하기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혼자인 거다. 노년의 삶이란 그런 거다. 


  3층에 내려가기 전, 설거지를 끝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들어올 때, 13층에 사는 할아버님을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니,  어디 가?라고 물으신다. 네, 올라갑니다. 어디 가냐고! 귀가 어두우신 모양이었다.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올라가요라고 답했다. 아, 밖에 홈케어 업체 사람들이 짐 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이사 가는 줄 아셨던 거다. 아니라고 말했다. 

  몇 층에 사느냐? 

  7층입니다. 13층 사시죠? 

  어떻게 아느냐? 

  몇 번 뵀어요. 

  혹시 그때 자전거 밀어준? 

  아, 네(3월이었던가? 강의가 없는 날, 아내와 함께 외출하려고 차에 탔었는데, 할아버지가 자전거에 짐을 싣고 올라가시는 걸 보고 내려서 좀 도와드리고 다시 차에 올랐던 것 같다).

  몇 이나 돼?

  셋이요, 아들 아내 저.

  상추 좀 가져가. 

  아이고 아닙니다 얼마 전에 샀어요. 다음에 기회 되면 그때는 꼭 받아갈게요. 

  (땡-7층입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뵐게요!


  앉자마자 일어나는 건 도저히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할머님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기도 미안했다. 그럴 거면 앉지도 않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빵이며 과자며 열심히 먹다가도 나를 보고 울먹이는 아들을 보면, 얼른 일어나야 했다. 자꾸 더 놀다가 가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여러모로 불편한 방문이고 말았다.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다고, 아마, 아들이 오후부터 피곤해서 씻기고 재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빵도 몇 조각 남기고, 괜한 설거지만 만들어 드려 죄송하다고 연신 말하면서 나왔다. 아들은 계단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언제냐는 듯 당당해진다. 다음에는 장난감이나 이런 걸 챙겨 와야 할 것 같단다. 집에 왔을 때, 아들은 엄마에게 안겨 또 울고 말았다. 나와 같다. 울보.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다. 동생네가 어제부터 와 있다고 들었다. 어젯밤 첫 손주인 조카와 어머니의 사진이 카톡으로 왔다. 햄버거집에서 받은 종이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표정이다. 공교롭게도 부모님 댁도 3층이다. 어쩌면, 3층 할아버님과 할머님도 이렇게 손주가 놀러 오는 순간을 상상하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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