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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n 26. 2023

이기적인 인간에게 책임질 생명은 두렵다

  생명은 두렵다. 고양이가 귀여워도 그의 삶이 내 책임이 아닐 때에야 그렇다. 그의 삶을 응원하고 돌아설 수 있는 바로 그 거리에서만 고양이는 나에게 사랑스러운 생명체이다. 

  어릴 적에 키웠던 남생이 두 마리와 앵무새 한 마리도,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과실치사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많은 먹이를 줬거나, 청소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았거나, 귀엽다고 지나치게 만져 스트레스로 죽었을 테니까.

  하물며 사람이야. 청년기의 내가 아기를 두려워했던 이유를 그들의 맑은 눈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었지만, 사실 그들 앞에서 내가 전적으로 책임만 있는 존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마주한 아기가 웃든 울든, 결국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제 어머니는 조경수의 전지 작업 결과를 보며 흡족해하셨다. 너무 웃자란 가지가 전망을 답답하게 만들고, 1층 사람들은 나무 그림자 탓에 심기가 편치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튼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일이 순전히 인간의 복지로만 여겨진다는 게 늘 놀랍다.


  오늘 아침, 문득, 나무는 어떻게 자라느냐고 아들이 물었다. 나는 씨앗에서 뿌리가 나고 잎이 나고, 뿌리가 더 자라고 잎이 더 자라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두 손을 이용해서 땅 위에 무성한 가지와 잎은 그만큼 뻗어나간 뿌리가 있다는 뜻임을 형상화해 설명해 줬다. 

  책임져야 할 생명인 아들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아내는 너무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자세하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게 내가 책임져야 할 생명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한 손은 가로로 눕혀 땅을 만들고, 다른 손은 세로로 세워 나무를 형상화한 나는 아들에게 계속 말했다. 우리는 위에 있는 가지와 잎만 보지만, 그 밑에는 그만큼 큰 뿌리가 있는 거야. 가지가 잘려도 뿌리만 튼튼하면 다시 얼마든지 자라날 수 있는 거야.


  그게 흔히 말하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을까? 꺾이지 않는 마음도 결국 꺾이지 않도록 보살피는 누군가의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왠지 모를 피로가 밀려온다. 꺾이지 않도록 보살피는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보살피는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보살피는 마음이... 그렇게 마지막에 다다르는 그 마음은 누가 보살필 수 있는 것일까? 그 최후의 마음이 꺾이는 순간, 모두의 마음은 꺾이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주말 동안 블라인드를 쳐 둔 난간에 둔 화분은 짙은 자국을 남겼다. 꽃이 시들시들해지면 물을 주라는, 선물해 준 이에게는 대수롭잖았을 메모 내용에 따라 물을 준 탓이었다. 나의 마음은 이 식물이 꺾이지 않기에 충분했을까? 나의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화분은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이틀 동안, 그렇게 숨죽여 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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