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이야기와 안 진지한 이야기가 누구 연기인지 알 수 없게 뒤섞이듯 공기에 스민다. 내뿜을 연기가 없는 나는 입김을 내뿜는다.
아주머니께서 퇴근 전 청소를 하신다. 우리 곁으로 다가오신다. 발 밑에는 꽁초가 세 개 떨어져 있다. 오로지 담배꽁초만을 보고 다가오신 아주머니께 죄송하다 말씀드렸다. 저희 것은 아니라는 멋쩍은 농담을 섞는다. 담배도 안 피우는 정 선생이 그런 말을 하느냐고 곁에 있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아, 제가 다니는 복도를 청소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셔서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당신도 그 말을 할까 말까 목구멍까지 넘어왔었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우리 누구도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지만,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진지한 이야기에 안 진지한 이야기를 덧보탠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사진 이야기다. 모두 자신의 스턴트 대역 연기자와 함께 찍은 사진인데, 마지막에 성룡이 혼자 앉아 미소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한 분이 성룡은 인성이 별로여서 그렇지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톰 크루즈가 성룡의 영향을 받아서 스턴트 연기를 대역 없이 자신이 소화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고 멋진 모습이지만, 대중의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며 멋진 연기를 보이는 것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딴생각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리얼한 것(리얼하다는 말은 어쩐지 현실적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느낌이다)을 추구하고, 더욱더 리얼한 것을 매체 속에서 요구한다. 그래서 더욱 큰 자극을 요구한다. 선정성과 잔혹성은 이제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다만 그것이 예전에는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전달되었다면, 이제는 영상 속 장면이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른바 생성형 AI나 증강현실, 가상현실, 하드웨어의 뒷받침으로 향상되는 3D 그래픽 수준이 기존의 인간이 할 수 없는 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오죽하면 성룡 영화와 마블 영화를 대비하며 비꼬는 게시물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주 회자될까.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위험한 공사나 오물을 치우는 더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지식을 쌓았고 추상적인 세계에서 자신만의 건축물을 만들었다. 이제는 그 추상적인 지적 건축물조차 인간이 창조한 새로운 인간형에 의해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이제 앞서 가는 인간은 늙고 병들 수 있는 인간을 고용하거나 여러 가치(이를테면 인권)를 내세우면서 혹은 여러 난관(꺾이는 마음과 사라지는 동기 같은 것)을 마주하면서 작업을 해 나가는 인간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거부할 것만 같다.
로봇, 인공지능은 언제나 암울한 미래와 함께 이야기된 존재들이다. 그런 전망에 관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여러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암울한 전망에 관한 논의가 제법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인간이 지닌 여러 결점들, 특히 의문을 제기하고 의심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결점이 사실은 용기를 일으키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런 과정을 기다리는 데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만 같다. 선정적인 사진을 내놓으라면 내놓고, 무엇보다 잔인한 방식으로 살인하는 장면을 내놓으라면 내놓는 일이 의문과 의심, 주저함과 망설임을 설득하는 과정 없이 가능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사고 과정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처럼 즉각적이고 단순해질까 봐 두렵다. 부정성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힘이니까 말이다.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박명수가 제안했던 미래 예능이 떠오른다. 높은 빌딩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떨어지면 그대로 죽는... 극한의 리얼리즘. 세계적인 석학이 내놓고 있는 문제의식을 수년 전 개그맨의 농담이 이미 지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