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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이두씨 Jul 20. 2022

#18. 그리고, 남은 사람들

2022년 5월 10~11일

다음날 언제인지 모르게 아침에 눈을 떴다.


아이들의 등교 준비 소리에 눈을 떴던 거 같으니, 아마도 아침 8시쯤이 되지 않았나 싶었다. 장모님은 당일 서울에서 조카의 등원을 위해 이른 새벽녘에 이미 떠나신 뒤였다.


평상시의 스케줄이었다면, 아내가 아침 7시쯤 출근하고, 내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아이들의 등원 준비를 했었을 테지만, 그날은 내가 전날 잠을 설친 덕에 아내가 아이들의 등원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출근에서 자유로웠고, 아내는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부상'으로 인한 '5일의 '부여받은 상태였다. 직장인들은 대게 부모상인 경우 며칠간의 공가를 부여받는데, 아내가 다니고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부모상으로 인한 공가가 5일로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가 토요일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5일의 휴가는 다음 주의 평일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인 9~13일로 정해져 있었다. 부모님의 상을 이겨내기엔 짧다면 짧은 5일의 휴가였지만, 그래도 그 덕에 아내가 옆에 있으니 마음이 한결 평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중략)...


동생과 아내가 절을 드리고 난 뒤, 아이들이 같이 절을 올렸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현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슬픔에는 공감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대로의 모습도 충분했다. 아이들이 전날 적어온 편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그네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했지만, 못내 쑥스러운 듯이 조그마하게 이야기했다.


"그냥... 할아버지가 읽으시면 안 돼?"

"할아버지... 못 읽으셔. 아빠한테 줘. 내가 읽어줄게. 괜찮지?"

"응."


쑥스러워하는 아이들이 편지를 내게 들이밀었다. 간 봉투 안에 들어있는 그 조그마한 카드 겉면에는 이쁜 '카네이션'이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어버이날 전일에 돌아가신 게 새삼 생각났다.


나는 첫째 아이의 편지부터 받아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렸다.


친할아버지 사랑해요♡
영원히 할아버지를 기억할게요
할아버지의 얼굴도 자주 기억할게요
전 할아버지를 믿어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사랑해요


연이어 둘째 딸의 편지도 읽어 내려갔다.


친할아버지 아프지 마세요 사랑해요
좋은 하늘나라 가시고 잘 지내세요
[둘째 손녀] 많이 슬퍼요 ㅠㅠ
[둘째 손녀]가 응원할게요^^
할아버지 정말 정말 사랑해요♡
I Love You


아이들의 부족한 글솜씨 때문에, 얼마나 그 의미를 잘 알고 적었는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글을 읽어 내려가야 했다. 아버지에게 글을 읽어드려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글귀를 읽었다고 하더라도 뒤숭숭한 마음을 잘 잡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간단한 제사를 마치고, 그곳에 모인 모두는 제사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아버지를 추억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여서 오랜 시간을 야외에 자리할 수는 없었다. 오후 1시쯤이 되어 납골묘에서의 행사를 정리하기로 하였다.


떠나기 전에 나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다시 한번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넣은 곳의 대리석 뚜껑을 조심히 열어 다시금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이틀 전만 해도 따듯했던 그 유골함이 이제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차가운 유골함은 마치 우리에게 지금의 현실을 알려주는 듯했다.


'뜨겁던 이별의 시간은 이제 끝났다. 이제는 냉정하게 현실을 살아라.'

...


나뿐 아니라 모두의 마음이 아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흐른 뒤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립니다.

https://bookk.co.kr/bookStore/66332918fc0d5301c78a2e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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