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알바니아 베라트
알바니아 소도시 여행의 마지막 종착점 베라트.
베라트는 천 개의 창문이라는 사진 한 장으로 수많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는 도시이다.
처음엔 별다를 것 없는 작은 도시를 그것 하나 보자고 가야 하나 싶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천개의 창문이 담긴 사진 한장에 그새 마음을 고쳐먹는다.
여행은 때론 사진 한 장, 글 한 문장으로도 시작되곤 한다.
그래서 나도 이 여행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이곳의 아름다움, 그때의 추억, 그곳의 감성을 전해주고 싶어서.
좋은 기억과 소중한 추억을 오래오래 되새기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말이다.
가끔은 기대하며 왔던 것과는 다른 어떤 것들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꼭 바라고 왔던 모습들이 감흥을 주지 않아도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먹은 음식들,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들린 노랫소리 하나가
모두 여행이고 감동이니 말이다.
베라트의 천 개의 창문이라 불리는 언덕 위 집들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양 쪽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별 다른 색 없는 오래된 나무 색의 지붕과 돌뿐임에도
그 뒤의 절벽과 산, 그리고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모여 있는 집들이 주는 우직함이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베라트의 집들은 왠지 모르게 힘겨운 세상 풍파를 다 견디고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듯한 듬직함이 묻어난다.
천 개의 창문을 뒤로하며 베라트의 성을 보기 위해 언덕을 오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을 지키고 있었을 단단한 돌길에 발을 디디며
쭉 뻗은 가파른 언덕길을 한 발 두 발 걸어 오른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
이 곳을 보기 위해 오르는 사람들,
이 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함께 이 언덕을 오르고 있다.
언덕 위에 다다르자 견고한 성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안은 또다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이 안에서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을 살며시 엿보며 마을을 걸어본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건물이나 광경이 펼쳐지진 않지만
곳곳마다 녹아들어 있는 이 곳 사람들의 일상이 따스하게 번진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오후.
때 마침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한다.
배낭여행 중 처음 보는 비.
창가에 맺히는 빗방울이 바라만 봐도 시원하다.
빗소리, 천둥소리,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소리마다 여름의 더위를 한 꺼풀 벗겨내고 있다.
거리에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저녁이 되면
언덕 위 마을이 잘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테라스에 앉아 칵테일 한잔을 마시며 반짝거리는 베라트의 마을을 바라본다.
다리 건너편의 횐하게 빛나고 있는 집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던 때.
문득,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도
반대편에선 그저 환하게 빛나고 있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모습과 상황, 그들이 가진 것들이 꽤나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내가 가진 모습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더욱 반짝이는 불빛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불빛을 가지고 있는 우린
우리가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뿐.
베라트 밤, 천 개의 창문을 밝히는 불빛을 바라보니
꼭 내가 저 불빛만큼이나 반짝이는 사람이겠다 싶어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하나 둘, 빛나고 있다.
별 하나에 나 하나,
불빛 하나에 우리 하나.
베라트의 밤은 깊어가고 불빛들은 더욱 생기 있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