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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Dec 21. 2016

스페인 광장에서 우리만의 소풍을

#그런 곳, 그런 날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날 때쯤,

커튼을 쳐놓은 창문 밖에선 시끄러운 소리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고갤 들어 바라보니 계는 어느새 9시를 가리키고 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귓가에 멤돌자 나도 덩달아 몸을 일으켜본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어본다.

날씨를 보니 아침은 꽤나 선선한 듯하다.

적당히 겉옷을 걸치고 장바구니를 챙겨 들고는

집 앞 마트로 향한다.         



11월의 세비야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여름의 끝을 놓지 못한 뜨거운 햇살이 거리를 환하게 비춘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둥둥 떠있는 오늘은 아무래도 소풍을 가야겠다.     

어제부터 내일 아침 날씨가 좋거든 반드시 소풍을 가겠다며 단단히 마음을 먹었던 참이다.


반짝이는 아침햇살에 파란 하늘을 보자마자

한치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마트로 향다.     



필요한 식재료들을 몇 개 사두고

간단히 소풍에 챙겨 갈 음료수와 과일을 고른다.     

집으로 향하는 길, 좁은 골목을 걸으며

양 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벌써부터 발그레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소풍'

누구에게나 기분좋은 떨림을 주는 단어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그랬다.

바람이 좋고 하늘이 예쁜 날이면

도 모르게 소풍 하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내 마음은 저만치 먼저 소풍의 설렘을 마중나가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한가득 챙겨 나가기도 하고,

오늘처럼 조촐하게 간식거리를 사들고 가볍게 근처 공원으로 향하기도 했다.   



매일 먹는 똑같은 빵과 똑같은 샌드위치도

햇살이 좋고 바람이 부는 푸른 공원에 앉아 먹고 있노라면

그 맛은 푸른 하늘에 새하얀 구름만큼이나

매일 봐도 지겹지 않은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주곤 했다.


어쩌면 익숙한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간이 좋아 

계속해서 소풍을 꿈꾸는지도 르겠다.      


마침 집으로 오는 길에 눈여겨보던 베이커리에 들렀다.

소풍을 가거든 꼭 이곳에서 샌드위치를 사 가겠다며 미리 찜을 해둔 터였다.     

맛있어 보이는 살라미 샌드위치 하나와

초코머핀 하나를 더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트에서 몇 개 집어두었던 애플파이와 크루아상에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는 소풍 갈 채비를 마친다.  

   

밖으로 나오니 그새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이 머리 위를 채우고 있었다.

벌써부터 거리 곳곳에선 세비야의 가을을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노천카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다정한 연인들이 손을 꼭 잡은 채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세비야의 거리를 질주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태운 마차들이 끊임없이 거리를 오고 가고 있었다.     



그렇게 세비야의 가을을 만끽하며 20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커다란 스페인 광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던 스페인 광장.

며칠을 자전거를 타고 한없이 달던 스페인 광.


천천히 걸어가며 바라보는 순간에도

이곳은 여전히 아름답다.     



어떤 광장을 봐도 이런 설렘을 가져다준 곳은 없었다.

흔한 분수대와 넓은 광장, 그 뒤로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은 익히 알고도 남을 만큼 많이 봐온 터였다.      


그럼에도 스페인 광장에 첫 발을 내려놓던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오늘도 내일도 다시 꼭 이곳에 오겠노.   

  

곳에 있으면서도

또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눈에 담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혹시라도 어제 본 무지개가 오늘도 피었을까 하며

천천히 분수대 앞으로 다가가자

오늘은 기다란 다리처럼 끝까지 이어진 찬란한 무지개가 거짓말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무지개였을지도 모른다.

스페인 광장이 이토록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어쩌면 난생처음 보는 이 무지개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커다란 무지개가

내 앞에 이렇게나 가까이 피어있는 건 처음이었으므로.


스케치북에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크레파스로 그리던 무지개가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진 건 처음이었으므로.  

   

왼쪽, 오른쪽, 이리저리 걸어보며

무지개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모습에

어린아이처럼 신기해 발을 동동 구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깟 무지개가 아니었다.

한 번도 가까이 다가가보지 못 했던 무지개가

마치 어제도 오늘도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이곳을 그리워했나보다.    

무지개가 이렇게 피어있는데.

희미한 듯 선명하게 반짝이는 무지개가

나를 향해 커다랗게 두팔을 벌리고 있는데 말이다.     



분수대에서 한참을 서있다 동그란 광장을 한 바퀴 걷는다.

노란색 바퀴의 마차들이 끊임없이 광장을 돌고 있다.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기다란 성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수로 위에 연결된 낭만적인 다리 위를 오른다.     


반짝이는 조그마한 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채워놓은 다리는

그 위를 걸어 오르는 순간만으로도 영화 속을 헤매는 듯한 낭만에 취하게 만들고 있었다.



스페인광장의 짙은 운치에 빠져 한참을 걷다가 잠시 치에 앉아 

널따란 스페인 광장의 눈부신 경치를 조심스레 두눈에 새겨넣는다.


보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하염없이 마음을 빼앗긴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보고, 또다시 걷다가 돌아서서 바라보고는

스페인 광장에 연결된 커다란 공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동안 봐왔던 여느 공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랗고 무성한 나무들이 빼곡한 공원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 걸었던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그늘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살며시 맺혔던 땀방울을 닦아낸다.     



초록빛으로 가득 찬 공원을 천천히 거닌다.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

누군가는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공원의 분위기를 감상하며

푸른 나무가 우거진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공원은

한가로운 세비야의 오후를 여실히 담고 있었다.

잠시 열심히 걸었던 다리를 쉬어두고는

아침부터 챙겨 온 과일과 샌드위치, 그리고 시원한 커피를 꺼낸다.    

 

시원하게 넘어가는 커피 한 잔에

여유로운 세비야의 한때가 천천 스며든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이 좋다.

조용한 하늘 위로 지저귀는 새들이 날아가고

깨끗하고 맑은 바람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느껴본다.     

나는 지금 세비야의 달콤한 오후 그늘 아래에서

작은 바람을 타고 흐르는

우리만의 소풍을 여행하는 중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꽤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으면 싶다.

다시금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 속이 엉켜 붙을 때는

언제고 이 순간을 떠올렸으면 싶다.    

 

어느 곳에 있더라도

세비야의 바람과 햇살과

나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반짝이던

른 존재들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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