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떡하지....?싶던, 망연자실 자포자기, 그 모든 날
나에게 포르투갈은 남달랐다.
왠지 모르게 그 이름에서부터 남다른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첫눈에 반해버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사람이 내 운명일 거라 믿어버리는 것처럼,
포르투갈은 무작정 내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고
이 여행의 끝에서 언제고 가장 먼저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건 포르투갈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포르투갈의 낭만을 꿈꾸는 수많은 배낭여행자들과 함께
빈티지한 감성이 깃들어 있는 포르투갈 리스본에 발을 내디뎠다.
꽤나 많은 여행자들이 나만큼이나 포르투갈에 대한 설렘을 얼굴 한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푸른색 하늘에 설레는 발걸음을 옮기며 집에 다다랐다.
짐을 풀어놓기가 무섭게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포르투갈의 푸른 하늘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한없이 일방적인 탓이었을까.
섣불리 들떠버린 탓이었을까.
리스본의 푸른 하늘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약간의 구름이 끼어있던 하늘은
그사이 어두컴컴한 먹구름으로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더군다나 손쓸 새도 없이
하늘에선 이내 빗줄기가 떨어진다.
애써 괜찮다며, 이것도 다 낭만이라며
주춤거리려는 마음을 붙잡은 채 계속해서 걸었다.
리스본이니까.
나에겐 언제고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할 리스본이니까.
그래야만 했으니까.
리스본에서만큼은 모두가 사랑에 빠진다는 에그타르트마저
나에겐 커다란 감동을 주지 못했다.
억지로 느껴보려 해도 부드러운 크림이 전해주는 묵직한 달달함은 하나 이상으로 먹히지가 않았다.
어쩌면 조금 피곤하게 움직인 탓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제일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가지 않은 탓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의미없는 위로를 전하며 진한 커피로 입안을 헹구고는 다시 리스본을 걸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리스본의 28번 트램을 찾고 싶었다.
이곳에 오기 전 우연히 마주친 리스본 트램 사진은
리스본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계속해서 내 마음을 흔들어댔다.
사진 속에선 오래되고 낡은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양옆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좁은 골목 사이로
조그만 한 칸짜리의 노란 트램이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고,
그 골목의 끝엔 푸른 바다가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봤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머릿속에 그 장면이 선명히 그려지고도 남을 만큼 보고 또 본다.
반드시 찾겠다고,
내 눈으로 그 아름다운 리스본의 한 장면을 꼭 담아내겠다고,
그것만큼은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며 꾸역꾸역 언덕을 오른다.
이쪽이 아닌 것 같아 건너편으로 걸어가기도 하고
이곳이 아닌 것 같아 지하철을 타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아무리 걸어봐도 내가 본 사진에서와 같은 골목도, 트램도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비슷한 골목이 있으면 트램이 다니질 않았고,
28번 트램이 다니는 길목을 찾으면 그 뒤엔 반짝이는 바다가 없었다.
겨우겨우 골목 끝자락에 보이는 바다를 찾으니
그곳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빛바랜 건물 하나조차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걸어왔던 길을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때,
반대편에서 정신없이 모인 사람들 사이로 연신 카메라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로 내가 찾던 사진 속의 그 골목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상상하던 곳이 아니었다.
유명해진 탓인지 관광용으로 만들어놓은 가짜 트램이 전부였다.
몇 유로에 사람들을 태우고 오르락내리락 밖에 할 줄 모르는
껍데기뿐인 트램만이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허무했다.
간신히 찾고 찾은 곳이 결국엔 다 가짜였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한, 내가 상상한 리스본이
이렇게나 나에게 매정하게 등을 돌리다니.
아무도 속인 사람이 없건만
누군가 나를 제대로 골탕 먹인 것만 같아 그저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한없이 걸어 다닌 나는 리스본에서 무엇을 한 걸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린 걸까.
나에게 리스본은 왜 이리도 절망적인 걸까.
이 허무함을 달래주기엔 다른 아늑함이 필요했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말없이 따뜻하게 감싸 줄 조그만 장소가 필요했다.
나는 조금 남은 힘을 쥐어 짜내며 다시 알파마 지구로 향했다.
숨이 차오르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나면
언덕이 끝나는 자리엔 언제나 깨끗하고 정갈한 테이블이 놓여있는 가게가 있었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던 그 가게는
지나갈 때마다 안에서 피어오르는
뜨끈하고 달큰하게 풍기는 냄새에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집에 오고 나가는 발걸음을 한동안 붙잡곤 했다.
그런 날이면, 잠시 걸음을 멈춰두고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를 맘껏 들이마시며
때때로 소소한 행복에 잠기기도 했다.
그곳이라면 조금 괜찮을 것 같았다.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돈된 테라스가 단출하게 놓여있는 그곳이라면
상처받은 리스본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것 같았다.
어쩌면 낯설기만 한 리스본에 마음을 붙여 둘
작고 아늑한 나만의 단골가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기대를 안은 채 발걸음을 옮긴다.
어렵사리 사람으로 꽉 찬 트램을 타고서야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
이미 하늘은 더욱 짙은 어둠으로 물들었고
뚝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언덕을 오를 힘조차 바닥까지 떨어진 지 오래였다.
풀리려는 다리를 붙잡고 겨우 언덕을 오른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남은 자리 하나를 찾아 앉고서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몇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소시지 테이블 하나와 조개 요리하나
그리고 갈증을 달래 줄 맥주가 나온다.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음식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조심스레 맛을 본다.
비주얼부터 심상치 않던 음식들은
결국 믿었던 곳에서마저 크나큰 시련을 안겨주고 말았다.
심지어 시큼털털한 맛의 소시지, 소금에 절군 듯 짜디짠 소시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시지까지.
그 흔한 요리마저 나에게 등을 돌린다.
이건 내가 상상한 단골가게가 아니었다.
내가 상상한 리스본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리를 주무르며 돌아다닌 보람이 겨우 이뿐이라니.
순간 억울한 마음이 마구 솟구친다.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가게를 나와
껌껌한 하늘 아래 가만히 놓여있는 벤치에 잠시 기대어 앉았다.
허탈함에 온몸에 힘이 풀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연히도 먹구름만 잔뜩 끼어있는 리스본도
이미 관광지가 되어버린 사진 속의 트램도
끝없는 기대와 미련으로 걷고 또 걸었던 나 자신도
실은 아무도 탓할 게 없었다.
허무하고 아쉽지만
속상하고 화도 나지만
결국 리스본은 내 여행에 있어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이 되지 못할 뿐이라며
실망이란 이름표를 남긴 채 리스본을 단념시킨다.
만약 리스본 하나만 보고 달려온 여행이라면
그 상심이 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리스본만을 위해 1년을 꼬박 기다리고,
모든 계획을 리스본 하나를 위해 짜고 고치고 채우면서 기다렸더라면
아마 쓰라린 마음을 감히 주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리스본 하나만을 위해 떠나온 것도,
리스본이 이 모든 여행의 마지막도 아니다.
나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고
이곳이 아니라면 허무해진 내 마음을 채워 줄 다른 곳은
그게 어디든 반드시 마주치게 되어있으니.
기대했던 곳에서 좌절을 맛보는 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감동을 받는 것도,
완벽하게 짜 놓은 계획이 허무하게 뒤틀리는 것도,
예상했던 방향이 전혀 다른 곳으로 제각각 흩어져버리는 것도,
어쩌면 그 모든 것은 여행의 진실된 한 면들일 것이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
- 빨강머리 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누군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게 도대체 뭐가 멋지단 말이야?!"라며
아직 매운맛을 덜 본 속 좋은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때때로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서도
괜찮다고, 괜찮다고 끊임없이 말해줄 수 있는 한마디 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말 한마디쯤은 누군가 건네줘야 하지 않을까.
내 맘 같지 않은 일들의 연속일 때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답답한 순간들이 끝없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금 뒤집어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면?
언제든 내 생각대로 모든 일이 움직인다면?
어쩌면 인생을 위한 무모할지 모를 용기도,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끝없는 기대도,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만들어주는 소소한 재미도,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치게 될 묵직한 깨달음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릴지 모른다.
가끔은 무심히 무너지는 공들인 계획들에
차라리 모든 것들이 가만히 정해진 대로만 흘렀으면 하고 바랄때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넘어지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들을 통해서
내 안엔 넘어지기 전보다 더 많은 것들이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쓰라린 무릎을 어루만지는 법이라도 말이다.
세상엔 처음과 끝이 정해진 책과 이론이 아닌
직접 부딪히며 깨달아야 할 진리들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완벽했던 리스본이
나에겐 처참한 기억만을 선물해준 것처럼.
그러니 우린 넘어트리고 다시 세우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넘어트리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넘어지고 뒤틀리고 엉켜버리기 전엔 알 수 없으니.
나에게 그것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은
가끔 나를 보이지 않는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빠트리기도,
억장이 무너질 듯한 좌절 속으로 집어넣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린 끈질기게 진흙탕을 빠져나와 다시 또 달린다.
그런 순간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존재할때야
그 뒤에 마주칠 찬란한 순간들이 더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인생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
모든 일들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생각하는 것마다 모조리 어긋나기만 할 때,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이 가져다준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보자.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가슴 벅찬 감동의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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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 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2017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다가오는 새해에는 행복하고 따뜻한 일들이
더욱 가득하시길 바래요~!
모두의 일상이 더욱 따스한 한 해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