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리파운더가 되기 어려운 이유

실패한 사람은 수용이 힘들기 때문이다.

실패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며, 그것이야말로 삶의 스승이다.
– 존 맥스웰 -

실패한 사람들은 추진력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또한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다. 비참한 상황에 부닥쳐 있을수록 상황을 수용하지 못해 절망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실패는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의 위협이 따르기 때문이다.

지향하는 모든 것이 현실과 일치되지 않는 이유다. 실패한 사람에게 실패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닥쳐있는 현재 상황을 정리하는 것조차 어려워서다. 실패한 사람은 미래와 현재 벌어진 상황의 간격이 크다. 시공간 사이가 크면 저항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그때


“희망 따위 없어!”


라는 말이 나온다. 실패한 이들에게 ‘희망’이란 현실에 근거한 희망이다. 애초부터 방향이 잡혀있지 않은 희망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현실에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희망’, ‘도저히 희망할 수 없는 희망’이다.

누군가는 실패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면 희망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힘들다고 말해주고 싶다. 수용되지 않은 희망은 좌절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흔히 좌절의 깊이와 희망의 높이는 같다고 한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희망의 높이가 더 높다고 느껴지는 법이다. 희망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에 시도하는 용기, 계속 나아가는 인내, 도전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은 크게 실패한 사람일수록 갖기 어려운 행위다. 희망을 품기에도 그만큼 위치가 중요하다. 좌절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면 곧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희망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고 느낀다. 그런 점에서 희망은 실패한 사람보다 성공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더 많이 존재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희망은 실존적 불안에 저항하는 힘이다.
- 사회학자인 로스 엘런혼(Ross Ellenhorn) -

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희망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뭔가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강력한 움직임이 추진력이라는 것이다. 그런 추진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수용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패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용해야 인정하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사람은 수용하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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