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비소츠키(Vladimir Vissotski, 1938~1980)
그는 1980년 7월 27일 모스크바에서 42세의 한창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소련 당국은 당시 진행 중이던 모스크바 올림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비소츠키의 장례식에 대해 방송금지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한 라디오 프로듀서의 방송으로 그의 장례식이 알려지게 되었고, 장례식에는 수만 명이 운집했다. 2011년 러시아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비소츠키, 당신이 살아있었음에 감사해요'(Высоцкий. Спасибо, что живой, Vysotskiy. Spasibo, chto zhivoy)>가 상영되었다. 러시아에서는 현재까지도 그의 인기는 영원하다.
그는 소비에트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과 자유를 갈망한 러시아의 대표적 음유시인이다. 목소리는 짓눌려 신음하는 영혼의 뇌관을 격발 시키는 격렬함을 지니고 있다. 허위의식과 특권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의 소유자다. 그의 노래와 시는 단순히 비판과 저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대중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감동과 예술혼을 담고 있다.
“천사들은 왜 그토록 적의에 찬 분노를 노래하는가, 종은 왜 끝없이 오열하는가, 나는 왜 말에게 썰매를 빨리 끌지 말라고 소리치는가, 말아, 부탁하자, 조금만 그 걸음을 늦출 수 없겠니,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할 때까지 내 최후의 날을 늦춰다오” 그의 대표곡 야생마(Кони привередливые, Koni Priviredlivyje, 괴팍스러운 말)중 일부분이다.
특히 마이크 앞에 선 가수(Певец у микрофона, Pevets u mikrofona)에서는 “내 목소리는 음계의 단순함보다도 더 단순하다. 하지만 내가 진실의 어조를 잃는 순간 마이크는 채찍이 되어 내 얼굴에 흉터를 남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는 “돼지로 살면 돼지로 남을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700여 곡의 저항가요를 불렀으며 생전에 당국의 탄압으로 공식적인 음반을 발매할 수 없었으나 사람들 사이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전해지면서 얼굴 없는 가수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까지 널리 퍼졌다.
- 야생마 (Кони привередливые), Vladimir Vissotski -
나는 벼랑과 아찔하게 맞닿은 협곡을 지나간다
나는 말에 매섭게 채찍질한다
숨이 가빠 바람을 마신다
안개를 삼킨다
나는 길을 잃고 죽음의 황홀경에 빠지는 것 같다
[후렴]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너는 내 채찍 소리가 싫겠지
내 운명의 말은 기분 내키는 데로 움직인다
내겐 생명의 시간이, 일을 마칠 시간이 없다
나는 내 말에게 물을 먹이고 내 노래를 마치리라
그리고 잠시나마 그 강가에 머물며 숨을 돌리리라
나는 죽어간다
한 포기 이삭처럼 폭풍우가 나를 쓰러뜨리리
새벽에 썰매가 나를 눈 속으로 끌고 가리
말아, 부탁하자, 조금만 그 걸음을 늦출 수 없겠니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할 때까지는, 내 최후의 날을 늦춰다오
[후렴]
신에게서 초대받으면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가야 한다
천사들은 왜 그토록 적의에 찬 분노를 노래하는가
종은 왜 끝없이 오열하는가
나는 내 말에게 울부짖는다
속도를 좀 늦춰줄 수 없느냐고
[후렴]
말들아, 좀 천천히 좀 더 천천히
너희들에게 명령하는 채찍이 아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야생마들이 주어졌을까
나는 말들을 노래하리라
못 다한 노래를 부르리라
절벽 끝에 단 한 순간이라도 멈춰서서
하늘의 초청으로 가는 손님이 늦을 수 없어
천사들이 왜 저런 흉한 소리로 노래를 부를까
내가 통곡할 때,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나는 왜 말에게 썰매를 빨리 끌지 말라고 소리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