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 말이 사라진 순간을요.
“미안해요.”
“제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괜찮으세요?”
어느 날부터,
그런 말이 들리지 않게 되었어요.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도,
문을 꽝 닫아도,
기다리는 줄을 가로질러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갔어요.
그 누구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도시는 조금씩 달라졌어요.
거리엔 소리가 줄었고,
사람들 눈빛은 점점 흐려졌어요.
가끔 마주치는 시선도
금세 외면으로 바뀌었죠.
어느새 ‘괜찮아요’ 대신
‘내가 뭘?’이라는 말이 익숙해졌고,
‘죄송해요’ 대신
‘그럴 수도 있지’가 들려왔어요.
사람들은 몰랐지만,
도시에는 그 말들을 기억하는 작은 존재가 있었어요.
도심 골목 안쪽,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오래된 놀이터 옆
감정 정원이 있었어요.
거기엔
사람들의 ‘진심 어린 말들’이
꽃으로 피어나 있었죠.
"조심할게요."
"제가 너무 예민했나 봐요."
"그 말... 상처였다면 미안해요."
그런 말들이 있을 때마다
작은 분홍 기린은
꽃을 돌보며 노래를 불렀어요.
그 말들이
세상을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뿌리라는 걸
기린은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꽃은 더 이상 피지 않아요.
그 누구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으니까요.
정원은 점점 말라가고,
기린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점점 희미해졌어요.
아무도 그걸 보지 않았어요.
모두 바쁘고, 각자 바쁘고,
미안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있었어요.
장난감을 끌고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혔고,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이 떨어졌죠.
그 옆을 지나던 어른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갔어요.
속도도 늦추지 않았죠.
아이는 울지도 않았어요.
다만 조용히 인형을 주워들고
혼잣말처럼 말했어요.
“...미안하다는 말, 안 해도 되는 건가?”
그 순간,
감정 정원의 한 구석에서
시든 꽃 하나가
작게 흔들렸어요.
그리고
거의 사라질 뻔했던 분홍 기린이
조금, 아주 조금
숨을 돌렸죠.
아이는 어딘가를 본 것처럼
천천히 말했어요.
“나라도 말할게.
방금 그건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그냥, 미안해.”
그 말은 바람을 타고
도시를 돌았어요.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났죠.
누군가는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며 말했어요.
“아, 미안해요. 깜빡했네요.”
누군가는 골목길에서 아이를 놀래키고
조용히 무릎을 굽혀 말했죠.
“놀랐지? 미안해.”
작은 말들이 쌓였고,
조금씩 색을 잃었던 도시엔
다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이제 알게 되었어요.
‘미안해’는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다시 가까워지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걸.
그 말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금 덜 날카롭게 해준다는 걸요.
이제 감정 정원엔
꽃들이 다시 피고 있어요.
분홍 기린도 예전처럼 노래를 불러요.
그리고 그 노래는
작은 마음의 문들을
조용히 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