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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남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

제주살이의 끝은 언제나 조용하다

by 피터팬


제주에 남은 사람은 많지만,

조용히 떠난 사람도 많다.


어느 날 보던 가게가 문을 닫고,

늘 켜 있던 간판 불이 꺼져 있고,

그 자리에 흙먼지만 날릴 때,

나는 생각한다.


아, 또 누군가 떠났구나.


그들은 왜 떠났을까.


처음엔 누구나 비슷했다.

서울이 버거워서,

회사 생활이 숨 막혀서,

조금은 자기 삶을 찾아보고 싶어서

제주로 왔다.


“시급보다 해 질 무렵의 바다가 더 좋아요.”

“욕심 안 내고, 작게 벌어도 괜찮아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어요.”


그 말들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제주도 진심만으로는 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겨울이 오면 손님은 끊겼고,

비수기는 길었고,

지출은 꾸준했다.


임대료는 생각보다 비쌌고,

감귤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배달은 안 왔고, 택배는 지연됐고,

인터넷도, 행정도, 사람도 느렸다.


계절은 예쁘지만

예쁜 계절은 짧았고,

돈이 안 되는 날들이 길었다.


어느 날은 문을 열기조차 싫었고,

어느 날은 이 섬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외롭다”고,

“생각보다 잘 안된다”고.


괜찮은 척 했다.

버티는 척 했다.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보다 먼저 통장이 바닥났고,

자존심보다 먼저 집세가 밀렸다.

사람들보다 먼저 계절이 떠났고,

끝내 그들도 떠났다.


떠나는 이유는 결국,

돈이 없어서,

도움이 없어서,

기댈 데가 없어서였다.


꿈이 아니라, 현실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들은 그저,

제주에서 한 계절을 진심으로 살아낸 사람들이다.


다만, 버티지 못한 게 아니라

버틸 이유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들의 퇴장은 늘 조용했다.


간판은 없어졌고,

전화번호는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사람들은 금세 잊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걸음을 늦춘다.


그냥...

누군가 있었던 자리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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