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찬스보다 필요한 건, 작은 배려심
한때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이 유행이었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유기농 식사를 하고,
반려동물과 함께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삶.
많은 이들이 그것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제주에서 저렇게 살고 싶다’고 꿈꿨다.
그 여운은 오래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장면들을 떠올리며
누군가는 말한다.
“그 삶, 너는 이미 살고 있네.”
그 말 속엔 묘한 착각이 있다.
제주에 산다는 것과
제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건
다른 얘기다.
요즘은 유튜브 브이로그,
감성 제주 리트릿 콘텐츠들이
그 환상을 이어받았다.
감귤밭 사이를 걷고,
빗소리를 들으며 드립커피를 내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프레임에 담는다.
그 영상들을 본 사람들은
이제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내게 연락해온다.
“우리 제주 가는데, 너희 집 가도 돼?”
처음엔 그런 연락이 마냥 반가웠다.
특히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친한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내가 더 준비하고 싶어진다.
아침엔 커피를 내주고,
밤엔 이불을 더 따뜻하게 펴준다.
함께 마신 술 한잔에 웃음이 피어나고,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여운이 남는다.
기꺼이 고생하고도, 아깝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연락할 때다.
평소 연락 한 통 없던 사람이
뜬금없이 “잘 지내?”로 말을 걸고는
대뜸 묻는다.
“우리 제주 가는데, 너희 집 가도 되지?”
그 한마디가
내 하루를 전부 흔든다.
청소와 식사 준비,
조심스러운 공존,
그들의 여행 일정에 맞춰야 하는 나의 생활.
이건 잠깐 머무는 쪽이 아닌
매일 살아가는 쪽만이 느낄 수 있는 피로다.
나는 지금
제주 중산간의 작은 전원주택에 산다.
고요한 들판 너머, 멀리 바다가 희미하게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맑은 날엔
수평선이 은빛 실처럼 반짝이고,
해 질 무렵이면 바람결에 파도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스친다.
가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풍경이 내 삶을 감싸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아마 그들 눈엔
그 자체로 그림 같고,
민박집처럼 열려 있는 공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집엔
내 일상이 있고,
지켜야 할 조용한 리듬이 있다.
그들은 모른다.
그 ‘며칠’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침범인지.
예전엔 시내 아파트에 살았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서울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살았다.
그때도 누군가는 말했다.
“제주에 산다며? 좀 재워줘.”
지금은 단지
‘바다가 보인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이들이 똑같은 말을 한다.
그 말엔 변한 게 없다.
더 익숙해졌고,
더 뻔뻔해졌을 뿐이다.
예전에 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말했다.
찾아오는 지인들에 지쳐
집을 아예 영업용으로 돌렸다고.
“돈이라도 받아야 덜 억울하더라고요.”
그 말이
지금은 기분 좋게 이해된다.
나는 민박집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손님을 맞이하는 삶이 아니라,
내 일상을 지켜내는 삶이다.
언젠가는 나도
정말 반가운 이를 위해
햇살 좋은 마루에서 차 한잔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주는 넓고
좋은 숙소는 정말 많다.
검색 한 줄이면 바다 소리 들리는 숙소도,
귤밭 옆 작은 독채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제주에 지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집과 시간을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
그저 가볍게 안부를 묻고,
스쳐가듯 차 한 잔 나누는 것.
그 정도면 충분히 따뜻하다.
그리고 그게,
서로에게 더 오래 남는 ‘좋은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