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문화 경험
1. 익숙한 듯 낯선 말, 제주어
제주에 처음 왔을 땐 사투리 걱정은 없었다.
생각보다 외지인도 많았고,
집 계약도 젊은 부부랑 했기 때문에 대화할 때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냥 ‘제주 사람들도 표준어 잘 쓰네’ 하고 넘겼다.
그러다 어느 날, 3층에 사시는 주인 할머니를 처음 뵀다.
우리는 4층에 살고, 2층엔 주인 아들 부부, 3층이 할머니 댁이다.
처음 인사를 드리는데,
할머니가 이것저것 챙겨주시면서 말을 건네셨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귀가 잘 안 들리는 건가 싶었다.
분명 한국말인데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어디 간?” (갔냐?), “언제완?” (왔냐?), “밥먹언?” (밥 먹었냐?), “핸?” (했냐?)
표정이나 분위기 덕에 대충은 짐작됐지만,
처음 듣는 말투였고,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한 번은 버스에서 할아버지가 통화를 하시는데,
말끝마다 “~햄쪄”, “~그랬쪄” 이런 말이 붙었다.
처음엔 일부러 귀엽게 말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그냥 평소 말투였다.
근데 이상하게 하나도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듣고 있자니 정감이 있었다.
제주어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제주상공회의소에서 운영하는 제주어 수업에 신청했다.
교육 첫날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나 빼고 전부 어르신들이었다.
솔직히 좀 의외였다.
‘제주어를 지키자’는 말은 뉴스에서도 많이 들리는데
정작 젊은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구나 싶었다.
수업 중 강사님이
“요즘 많이 알려진 표현들 있죠. ‘혼자옵서예’ 같은 거요.
실제로 어르신들이 쓰시던 제주어랑은 좀 다를 수도 있어요.”
라고 하셨고,
바로 어르신들이 “그건 우리가 쓰던 말이 아녀.” 하시며
이야기가 길어졌다.
듣다 보니 알겠다.
이건 그냥 방언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 정서, 역사까지 다 들어 있는 언어구나.
단어 하나에도 세대마다 해석이 다르고,
그 안에 담긴 경험이 달라서
수업은 종종 토론처럼 흐르기도 했다.
제주어를 배우면서 점점 느꼈다.
이건 말 몇 개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제주를 진짜 이해하려면,
제주어라는 문을 한 번은 꼭 열어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문을 지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이곳 어르신들이라는 것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2.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 괸당 문화
제주에 내려와서 땅을 알아보러 다닐 때였다.
어느 동네 이장님을 만났는데,
나한테 직접 뭐라 하신 건 아닌데 대화 중에 “육지것들”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처음엔 꽤 당황스러웠다.
그땐 제주에 외지인들이 땅을 사들이던 시기였고,
중국 자본이 들어오고, 너도나도 펜션 짓겠다고 여기저기 허가받으러 다니던 때라
마을 분위기가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장님 입장에선
조용하던 동네에 외지인이 찾아와서 땅 보고, 사진 찍고,
‘이 동네 괜찮네요’ 같은 말 하면
반가움보단 경계심부터 생기는 게 당연했을 거다.
그땐 조금 서운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냥 자기 동네 지키려는 마음이었다.
여기선 뭐든지 가족 먼저, 친척 먼저, 괸당 먼저다.
‘괸당’이란 말도 처음엔 어색했는데,
들어보니까 피가 섞이지 않아도 오래 알고 지냈거나
같은 동네에서 자란 사이면 괸당이라고 부르더라.
서울에선 그런 게 ‘인맥’이라고 불렸겠지만,
여기선 정서적인 끈이 훨씬 더 강하다.
심지어 “여당 야당보다 괸당당이 더 세다”는 말도 있다.
학벌, 직장, 출신 지역?
그런 건 제주에선 별 의미 없다.
여기선 “어디 동네 누구야?”
그게 더 먼저다.
이런 문화는
4.3이나 보릿고개 같은 힘든 시절을 지나오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때 서로 안 도와주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사람’ 챙기는 문화가 만들어진 거다.
지금은 좀 달라졌다.
도움받고 나면 바로 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고,
괸당이란 말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순수했던 정이
이제는 계산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거다.
그래도 여전히 여기선,
뭘 하려면 누굴 아는지가 중요하고
누굴 아는지보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끔 답답하긴 해도,
도시에서 잊고 살았던 관계의 힘 같은 게 여긴 아직 남아 있다.
3. 이사에도 타이밍이 있다, 신구간
제주에서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지금은 매물이 없는데, 신구간 되면 좀 나올 거예요.”
신구간?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부동산 용어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이건 풍습이다.
제주에선 매년 1월 말쯤 되는 대한 이후부터 입춘 전까지,
일주일 정도 되는 기간을 신구간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가 되면
하늘에 있던 신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믿는데,
그래서 그 틈에 이사를 하면 탈 없이 잘 산다고 한다.
육지의 ‘손 없는 날’이랑 비슷한 개념인데,
여긴 그게 훨씬 뿌리 깊고 생활에 진하게 스며 있다.
그냥 미신 정도로 여기는 게 아니라
실제 이사 수요가 폭발하는 시즌이다.
집 구하러 갔을 때 부동산 사장님이 “신구간 지나야 매물 나와요” 하던 말이
그땐 잘 몰랐는데,
정말 그 시기 되니까 갑자기 여기저기 이삿짐 차량이 보이고,
부동산에도 매물이 확 늘었다.
이삿짐 센터는 예약하려면 미리미리 잡아야 되고,
집 고치려는 사람들도 다 그 시기 기다린다.
심지어 가게 오픈 날짜까지 신구간 피해서 잡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듣다 보면 좀 신기하지만,
살다 보면 이해가 간다.
이건 단순히 ‘믿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래 쌓아온 리듬 같은 거다.
4. 제주에만 있는 계약 방식, ‘년세’
제주도에서 집을 구할 때는 항상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처음에 괜찮아 보이는 집이 하나 나왔는데, 위치도 좋고 깔끔하고 가격도 꽤 착했다.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물어봤다.
“진짜 이 가격 맞아요?”
“월세 맞죠?”
그때마다 다들 “맞다”고 해서
거의 확신을 가지고 계약하러 갔다.
그런데 막상 계약서를 쓰려고 하니까 이상하게 숫자가 너무 크다.
알고 보니 그게 월세가 아니라 년세,
즉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이었다.
나는 계속 월세 가격인 줄 알고 있었고,
집주인은 당연히 년세라고 생각한 거였다.
서로 말은 통했는데, 내용은 완전히 달랐던 거다.
결국 계약은 못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제주에선 월세보다 년세가 더 흔하다는 걸.
전세는 거의 없고, 보증금도 적당히 두고 1년 치 월세를 미리 내는 식이다.
또 하나 특이한 건,
기존 세입자가 남은 기간을 넘기는 식의 계약도 많다는 것.
예를 들어 누가 1년 계약했는데 5개월 살고 육지로 올라가야 하면,
나머지 7개월을 누가 이어서 들어가 사는 구조다.
이런 시스템이 익숙해지면 꽤 실용적이지만,
처음엔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 집 싸다’ 싶으면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
그게 월세인지, 년세인지부터.
5. 결혼식이 ‘3일 잔치’라고?
제주에서 결혼식을 3일 동안 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
근데 실제로 그렇게 한다.
첫째 날엔 돼지를 잡는다.
그 고기로 순대나 돔베고기를 만들어
집 앞에 천막 치고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연다.
둘째 날은 본격적인 잔칫날.
하객들이 오고 가고, 음식 나르고, 인사 나누고,
이 날만 해도 행사 하나 끝낸 기분이다.
셋째 날에 드디어 본식.
신랑 신부가 나와서 정식으로 예식을 올린다.
근데 이미 이틀 동안 인사도 다 하고, 분위기도 익을 대로 익어서
정작 본식 날은 약간 정리하는 느낌에 가깝다고 했다.
이쯤 되면 결혼식이 아니라 동네 전체가 같이 여는 축제처럼 느껴진다.
부조 문화도 꽤 특이하다.
예를 들어 신랑이 세 형제 중 둘째인데
내가 형도 알고, 동생도 안다면?
그럼 셋 다한테 따로 부조를 해야 한다.
이걸 겹부조라고 한다.
요즘엔 개인 부담이 크다고 해서 간소하게 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작은 마을에서는 아직도 겹부조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부 신랑’, ‘부 신부’라는 개념도 있다.
실제 신랑 신부는 아니고, 결혼식 준비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하객 응대, 음식 준비, 연락 같은 걸 대신 맡는다.
이런 역할을 같이 하다가 실제로 가까워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아직 제주식 결혼식에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한 번은 꼭 가보고 싶다.
신랑 신부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동네와 사람, 관계까지 함께 담긴 자리일 것 같아서.
ps.
제주는 그냥 ‘한 번 다녀오는 여행지’로는 잘 안 보이는 것들이 참 많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더 낯설고
또 생각보다 더 깊고 단단한 것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중 일부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떤 건 슬며시 정이 붙기도 한다.
처음엔 몰랐지만
지금은 이 문화들이 이 섬을 지탱해왔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 안에 조금은 스며들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