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옛 모습을 잃어가는 애월 해안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by 피터팬


예전엔

제주에 지인이 온다고 하면

주저 없이 애월 해안으로 데려갔다.


공항에서 가깝고,

차로 달리다 보면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창문 너머 바다색을 본 순간

누구나 감탄했다.


“와, 바다색 진짜 예쁘다.”

“해외 온 거 같아.”


그 말이 듣고 싶어서,

그리고 나도 그 말에 늘 고개를 끄덕였기에

애월은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싶은 제주의 얼굴이 됐다.


제주에 살기 전,

일주일쯤 애월 고내리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머물던 숙소 주변엔

조용한 무인카페도 있었고,

걸어서 바다를 볼 수 있었고,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그냥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그중에서도

‘봄날’이라는 카페를 참 좋아했다.


창밖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였고,

햇살이 좋은 날이면

바다색이 정말 꿈같았다.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석양을 기다리던 그 시간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조용하고,

여유롭고,

누구 하나 큰소리 내지 않던 그 분위기.


그래서였을까.

그 이후에도 누가 오든

나는 늘 애월로 향했다.


특별할 것 없지만

있는 그대로 예뻤으니까.


요즘은 애월을 잘 가지 않는다.


한동안은 여전히 갔다.

습관처럼,

기억을 붙잡듯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는 풍경이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봄날 옆에 새 카페가 생기고,

그 옆엔 상가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리고,

야외 테이블이 더해지고,

소음이 조금씩 커졌다.


복잡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쩐지

편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애월은 나에게

조금 멀게 느껴졌다.


사람이 많아지고,

시설이 늘고,

야경이 생기고,

편의가 생겼다.


좋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낯설기만 하다.


그 불빛 아래

예전의 애월은

보이지 않았다.


이젠 애월을 가더라도

한담공원 산책로만 걷고 돌아온다.


봄날도 지나치기만 한다.


붉은 노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나는 그 안에서

예전의 편안함을

잃어버렸다.


애월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 제주를 걷다 보면

예전 제주를 찾기 어려운 곳이 많아졌다.


공사 중인 구역,

새 건물이 들어선 바닷가,

자연과 어울리던 해안선이

하나둘 잘려나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제주엔 비수기가 사라졌다.


공항은 사계절 내내 북적이고,

차는 많아지고,

도로는 막히고,

이면도로는

겨우 한 대 지나갈 틈만 남아 있다.


편리함은 늘었는데,

편안함은 줄어든 느낌이다.


나는 그냥,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다.


조금은 불편해도 괜찮으니까.


있는 그대로였기에

더 깊고, 더 아름다웠던

그때의 제주는

조금만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