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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가 생각보다 힘든 이유

외지인이 느끼는 제주의 현실

by 피터팬


삶은 현실이다.

제주에서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겠다”는 말을 건넨다.

바다 보며 사는 거 아니냐고, 매일 여행하는 기분일 거라고, 그런 말을 듣는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풍경은 여전히 예쁘고, 하늘은 자주 놀라울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는 일’은 다르다.

제주살이 2~3년쯤 되어 보니 이제 알겠다.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낭만은 있지만, 현실이 더 크다.


제주살이가 생각보다 힘든 이유


1.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다.


제주는 임금이 낮다. 단순노동은 최저시급에 가까운 경우가 많고, 전문직도 육지보다 조건이 나쁘다.

반면 집값은 비싸고, 식비도 높다. 기본 생필품이나 신선식품도 종류가 적고 가격은 센 편이다.

차 없이는 생활이 어렵고, 기름값도 만만치 않다.

택배 하나 시켜도 ‘배송비 + 배선료’가 붙는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기도 빠듯하다. 저축은커녕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다.


2. ‘고립’이 일상이 된다.


바람이 많이 불고, 태풍과 폭설도 잦다.

비행기와 배편이 동시에 끊기는 날이 수시로 생긴다.

사람도, 물건도 못 오고 못 간다.

육지에선 뉴스거리일 뿐인 날씨가, 여기선 삶을 바꾸는 변수다.

멀쩡한 일상이 한순간에 멈춰버리는 경험은 생각보다 불안하다.


3. 사람 사귀기 쉽지 않다.


관계 맺는 게 어렵다.

타지 사람은 많지만,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자주 떠나간다.

서로 조심스럽고,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가 힘들다.

제주 사람들과도 말투나 생활 방식, 정서 차이에서 오는 벽이 있다.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속은 자주 외롭다.


4. 가족이나 친구가 멀어진다.


보고 싶다고 바로 볼 수 없다.

비행기표 가격, 시간, 스케줄... 모든 게 ‘큰 맘 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가까이 있었을 땐 몰랐던 사람들과의 거리감이

제주에선 더 크게 다가온다.

가끔은 그냥 옆 동네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5. 제주는 여행지가 아니라, 일터다.


관광객은 쉬고 있지만, 나는 일해야 한다.

관광으로 인해 편해진 것도 있지만, 불편도 크다.

주차는 늘 어렵고, 식당은 북적이고,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해도, 그 안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제주의 일상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이곳의 일자리는 대부분 관광이나 서비스업에 기대고 있다.

성수기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비수기가 되면 한순간에 고요해진다.

고정된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고, 일의 강도에 비해 임금은 낮다.

매일 바다를 보며 일하지만, 그 바다는 풍경이지, 쉼이 아니다.

관광객의 웃음 뒤에서 우리는 늘 바쁘고 지쳐 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땐 모든 게 새로웠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바다를 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에 감탄했다.

‘내가 제주에 산다’는 말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은 무뎌지고, 현실은 또렷해졌다.

살아간다는 건 어디서든 결국 비슷한 문제와 마주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문득 예전에 본 ‘강원도의 일기’라는 글이 떠오른다.

첫눈에 감동하던 사람이, 몇 달 뒤엔 눈을 ‘하얀 똥덩어리’라고 부르며 지쳐가던 이야기.

그땐 웃겼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이해된다.


제주는 여전히 풍경만 보면 참 좋은 곳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여유와 자유를 기대하며 왔지만, 막상 살아보니 그만큼 감당해야 할 것도 많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도 나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지치고, 외롭고, 막막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떠날 생각이 없다.


이게 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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