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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로망이 아닌 현실

로망과 현실의 차이

by 피터팬


꿈을 좇아 도착한 제주에서, 나의 첫 월급은 160만 원이었다.

그때도 빠듯했지만, 설렘이 모든 불안을 덮어주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물가는 더 치솟았고, 세상은 더 단단해졌다.

마트를 둘러보며 몇 개 주워 담았을 뿐인데, 계산대에선 5만 원이 훌쩍 넘는다.

겨우 10만 원어치 장을 봐도, 집에 돌아오면 싱크대는 텅 빈 느낌이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은 줄었고, 지갑은 점점 가벼워진다.


외식 한 끼도 이제는 큰 맘 먹어야 한다.

7~8천 원이면 먹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1만 원이 넘는 메뉴가 보통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하는 내 모습이 어쩐지 쓸쓸하다.


교통비는 또 어떤가.

특가 항공권이 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평일 낮, 가장 한가한 시간대에나 쓸 수 있다.

주말과 휴가철, 우리가 필요한 시간대 비행기는 여전히 비싸고,

비싼 돈을 내고도 표를 구하지 못하는 일도 흔하다.

남들은 큰돈을 주고도 제주에 오지 못한다는데,

나는 반대로 그 비싼 돈을 들여 부산으로 휴가를 간다.

‘제주 살면 교통비가 싸다’는 말은 이제 믿지 않는다.


살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월세 60만 원은 기본이고,

가스비, 수도세, 전기세까지 합치면 생활비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과거엔 서울 아파트 한 채면 제주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꿈이 가능했다지만,

지금은 3억, 4억을 들고도 땅을 찾기 어렵다.

법은 더 엄격해졌고, 기회는 더 멀어졌다.


아이 키우기에 제주가 좋다는 말은 맞다.

공기는 깨끗하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역시, 결국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현실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로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항상 말한다.

'한 달만 살아보세요.'

그 한 달조차,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요구할 테니까.


일자리 사정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다.

제주의 노동자의 절반이 15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다.

120만 원조차 넘지 못하는 자리도 부지기수다.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꿈꾸며 제주로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솔직히 말한다.

'제주로 내려온다고 인생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교통 사정도 녹록지 않다.

중심지를 벗어나면 버스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어디를 가든 차 없이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결국, 렌터카든, 자가용이든, 스스로 이동할 수단이 없으면

제주는 자유롭기보다는 갇힌 섬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에 산다.


숨이 트이는 공기,

구름 사이로 번지는 햇살,

귀를 맑게 씻어주는 바람 소리.

이 모든 것이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돈에 치이고, 외로움에 주저앉을 때도 많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살아 있다는 걸, 또렷하게 느낀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이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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