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2년 차
“오빠, 우리는 제주에서 잘 살고 있는 걸까?”
아내가 어느 날, 뜬금없이 물었다.
“그럼~ 잘 살고 있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진짜 의도를 모를 리 없다.
현실적인 아내와 이상만 좇는 나의 대화는,
진지할수록 늘 엇나간다.
불안한 미래를 말로 꺼내면
내가 꿈꾸던 이상이 무너질까 두려워
나는 자꾸 웃으며 넘긴다.
제주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마주한 건
‘수입’이라는 벽이었다.
세상, 땅만 파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 벽만 없다면,
이곳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을 텐데.
지금 나는 잉여 생활 중이다.
육지에선 내가 아내를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에 내려온 순간,
나는 잉여가 되어 있었다.
첫 직장 이후로
이력서를 수십 번 넣었지만,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현실의 벽도,
결국은 부딪히다 보면 무너질 테니까.
“오빠가 직장을 다녔으면, 지금처럼 나한테 잘했을까?”
“아니, 아마 지금보단 덜 했을 거야.”
나는 자유롭다.
대신 그 자유만큼
아내에게 미안하다.
둘이 함께 자유롭고,
함께 행복한 삶이 가장 이상적인데
지금은 나만 자유롭다.
“그냥 이렇게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아내는
세상을 달관한 사람처럼 말한다.
행복하다고 믿으려 애쓰면서도,
미래를 떠올리면
여전히 답답해한다.
지금은 좋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흔들리면,
이 행복은
쉽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
육지에선 돈 걱정은 없었지만,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제주에선 돈 걱정은 있지만,
삶은 행복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이곳에서 견딜 수 있는 건
그 어떤 간섭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 둘만 잘 살면 된다.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고,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주말마다 바쁘게 돌아다니던 육지의 삶과 달리
제주에선 함께 있는 시간이 넘쳐난다.
행사를 빠질 수 있는 이유가
‘제주에 살아서’라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숨을 쉴 수 있다.
예전엔 내가 제주에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아내와 둘이서만
이 먼 섬에서 살아간다는 건
내겐 오히려 낯선 자유였다.
아내는 처음에 이곳을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이곳과 정을 붙여가고 있다.
남들에게는 관광지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삶의 터전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우리 둘만의 일상이 조금씩 쌓인다.
이 시간이 나중엔
가장 찬란했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육지에선
평일엔 서로를 볼 틈조차 없었고,
주말엔 각자의 행사로 바빴다.
지쳐 있었고,
자주 다퉜다.
지금은 다르다.
매주 함께 제주 자연을 걷고,
각자의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이런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더 조심스럽게 하루를 쌓아간다.
이 정도면,
우린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