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생일은 조용해진다
퇴근길, 골목길을 지나는데
왠지 모르게 풍선이 하나 보였다.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도 아니고,
흙 묻은 도로 위에 힘없이 바람 빠진 채로 누워 있는 풍선.
그걸 본 순간,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여덟 살이던 어느 여름 저녁.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었다.
초코 케이크, 종이모자, 아빠가 몰래 준비한 손편지까지.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날따라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고,
몇몇은 감기,
몇몇은 잊었다고 했다.
나는 미끄럼틀 아래 쪼그려 앉아,
이미 젖은 케이크 촛불을 혼자 불었다.
“그래도... 나한텐 아빠랑 엄마가 있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실, 꽤 오래 울었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생일이란 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날이 되었다.
중학생 땐 학원 때문에,
대학생 땐 알바 때문에,
사회인이 된 지금은 회의, 회식, 업무 때문에.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누가 기억하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는 날.
그게 어른의 생일이었다.
이번 생일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조용히 집에 가서 컵라면이나 먹고
넷플릭스 하나 틀어두고 자는 걸로.
그런데 현관 앞에 케이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작고 흔한 마트 케이크. 초도 없고, 리본도 없었다.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
“나도 오늘 생일이에요. 생일 축하해요.”
글씨는 삐뚤했고, 누군지 알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누군가 내 생일을 알고 있다는 게 아니라,
이 세상 어딘가
나처럼 조용히 생일을 넘기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른이 되면 생일은 그냥 숫자일 뿐이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 조용히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는
작지만 따뜻한 기적이 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트에서 제일 작은 케이크를 하나 더 산다.
엘리베이터 앞에,
동네 벤치에,
혹은 이름 모를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
작은 쪽지와 함께 살짝 놓고 온다.
“오늘, 당신의 생일이라면...
그걸 기억해주는 사람이 어딘가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