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에만 잡히는 이상한 주파수
해가 지려고 하면
어느 골목엔 조용히 불이 켜져요.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스르륵,
라디오 하나가 켜지는 거예요.
그 라디오는
낮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요.
하지만 해가 지고,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삐!
치지직
낯선 소리와 함께 깨어나기 시작해요.
그리고 곧,
이상한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하죠.
“그날,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너를 좋아했단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한 번만, 한 번만 더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건 모두,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입으로는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오래오래 숨어 있던 말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같은 아이였어요.
아이의 이름은 별이.
별이는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로만 웃는 아이.
별이는 매일 해가 질 무렵이면
엄마 몰래 골목 끝으로 가서
작은 라디오 앞에 앉았어요.
그 라디오는 작고 낡았지만
별이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들려줬어요.
어느 날엔
누군가의 고백이,
다른 날엔
잊힌 편지처럼 오래된 후회가
흘러나왔어요.
그리고,
어느 저녁엔 이런 목소리가 나왔어요.
“별아, 그날 혼내서 미안했어.
사실 엄마는, 정말 많이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
별이는 깜짝 놀라
라디오를 바라봤어요.
그건... 엄마 목소리 같았거든요.
하지만 분명,
엄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다음 날,
별이는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엄마...
혹시,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 있었어?”
엄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쉬고,
별이를 꼭 안아주었죠.
그날 이후로,
별이는 매일 해지는 골목으로 갔어요.
그리고 조용히,
누군가의 ‘말 못 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들은
밤이 되면 꼭꼭 숨어버리고,
라디오는 다시 조용해졌어요.
하지만 별이는 알게 되었죠.
말은 때때로
입으로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세상 어딘가엔
그 조용한 마음을
들어주는 라디오가 있다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