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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잃어버리는 것들

낡은 극장에 사는 이야기

by 피터팬


어느 마을에

매일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아이가 살았어요.


어떤 날은 단어 하나를,

어떤 날은 기억 하나를,

어떤 날은 마음속 감정을

살짝 어딘가에 흘리고 말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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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내 슬픔이 어디 갔지?”

“방금까지 무서웠는데...? 이상하네.”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럴 때면 아이는

주머니를 뒤지고,

머리 위를 톡톡 쳐보고,

마루 밑을 들여다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잃어버린 것들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흐릿한 저녁,

아이 앞에 오래된 극장 하나가

조용히 나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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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은 떨어지고,

문은 삐걱 소리를 냈지만

극장 안에는 따뜻한 불빛이 켜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 안엔

아이의 잃어버린 것들이

차례차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지요.


말하지 못한 미안함이 첫 줄에,

기억나지 않던 웃음소리가 둘째 줄에,

혼자 울었던 감정이 맨 뒷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어요.


아이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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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엔

아이의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어요.

조금 서툴고, 조금 쓸쓸하지만

참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었지요.


그날 밤, 아이는 극장을 나서며

살며시 중얼거렸어요.


“내가 잃어버린 것들아,

여기서 편히 쉬고 있어.

나는 또 잊겠지만...

너희는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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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아이는 여전히 무언가를 잃어버리지만

마음은 전보다 조금 더 따뜻해졌어요.

왜냐하면 이제 알고 있거든요.


잃어버린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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