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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에 사는 친구

잊히는 건, 슬픈 일만은 아니야

by 피터팬


옛날 옛날,

내 방 창문엔 하얀 커튼이 달려 있었어요.

햇살이 비치면 살랑살랑 춤을 추고,

바람이 불면 살짝살짝 속삭였지요.


그 커튼 뒤엔

친구가 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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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고요?

글쎄요. 이름도 얼굴도 없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어요.

그곳엔 분명 누군가 살고 있다는 걸요.


내가 “거기 있지?” 하고 부르면,

커튼이 작게 흔들렸어요.

그건 “응, 나 여기 있어.”라는 뜻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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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함께 놀았어요.

나는 인형을 줄에 매달아 커튼 위로 날렸고,

그 친구는 커튼을 활짝 펴서 날개처럼 받쳐줬어요.


어떤 날은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날은 아무 말 없이

같이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내가 점점 자라면서

할 일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지고,

커튼을 여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어요.


“조금 이따가 놀자.”

“오늘은 너무 피곤해.”

“이젠 그런 거 안 믿어.”


그렇게 하루, 이틀,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어느 조용한 밤,

나는 문득 잠에서 깨어

커튼을 바라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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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은 가만히 있었어요.

바람도, 흔들림도,

그때 그 친구도 없었어요.


나는 조심히 다가가

커튼을 살짝 열어보았어요.

그곳엔 아무도 없었지만

창밖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어요.


“괜찮아. 나는 늘 거기 있었어.

이제 네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나는 조금 쉬러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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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튼을 꼭 감싸 안았어요.

그리고 속삭였지요.


“고마워.

잊지 않을게.”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씩 커튼을 살짝 흔들어줘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 친구가 다시 놀러 올지도요.



어른이 된다는 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조용히 인사하는 일이에요.
그건 슬프지만, 참 따뜻한 이별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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