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분담, 마음의 불만

바쁠 때 미뤄진 일들은 결국 말이 된다.

by 피터팬


우리는 집안일을 나눠서 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그 약속이 조금 어겨져도 큰 문제는 없다.


오늘 네가 못 하면 내가 하고,

오늘 내가 못 하면 네가 대신한다.


그 정도의 여유는

서로에게 있다.


문제는 둘 다 바쁠 때다.


각자 할 일이 몰려오면,

분담해둔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설거지는 싱크대에 쌓이고,

빨래는 세탁기 안에서 하루를 넘기고,

쓰레기봉투는

묶이지 않은 채 현관에 놓인다.


평소라면

그냥 내가 한다.


말하지 않는다.

굳이 짚지 않는다.


“지금 바쁘니까”라는 이유로,

집안일은 늘

말 없는 사람이 처리한다.


그렇게 몇 번은 넘어간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때마다 불만은 생기지 않는다.

아니,

생기지만 말로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바빠지는 순간,

미뤄둔 일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그때부터 집안일은

일이 아니라

증거가 된다.


“이거 원래 네가 하기로 한 거잖아.”


“나도 요즘 정신없어.”


“그럼 나는

안 바쁜 줄 알아?”


말은

집안일에서 시작하지만,

싸움의 본질은

집안일이 아니다.


그동안 아무 말 없이 넘겼던 날들,

혼자 처리했던 순간들,

괜찮은 척했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상대는 억울해하고,

나는 서운해진다.


서로 틀린 말은 하지 않는데,

대화는

점점 날이 선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누가 안 했느냐’가 아니라,

‘왜 말하지 않았느냐’라는 걸.


그리고 더 솔직하게는,

‘왜 늘 내가 먼저 감당했느냐’라는

질문이다.


바쁠 수 있다.

놓칠 수 있다.


그건

이해한다.


다만, 그 바쁨이 계속되면

집안일은

결국 말이 되고,


말은 감정이 되고,

감정은

싸움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싸움 끝에

다시 정리한다.


일을 나누는 방법보다,

미뤄진 마음을

어떻게 말할지.


다음에 또

바빠질 걸 알면서도,

그걸 미리 말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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