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때 미뤄진 일들은 결국 말이 된다.
우리는 집안일을 나눠서 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그 약속이 조금 어겨져도 큰 문제는 없다.
오늘 네가 못 하면 내가 하고,
오늘 내가 못 하면 네가 대신한다.
그 정도의 여유는
서로에게 있다.
문제는 둘 다 바쁠 때다.
각자 할 일이 몰려오면,
분담해둔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설거지는 싱크대에 쌓이고,
빨래는 세탁기 안에서 하루를 넘기고,
쓰레기봉투는
묶이지 않은 채 현관에 놓인다.
평소라면
그냥 내가 한다.
말하지 않는다.
굳이 짚지 않는다.
“지금 바쁘니까”라는 이유로,
집안일은 늘
말 없는 사람이 처리한다.
그렇게 몇 번은 넘어간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때마다 불만은 생기지 않는다.
아니,
생기지만 말로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바빠지는 순간,
미뤄둔 일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그때부터 집안일은
일이 아니라
증거가 된다.
“이거 원래 네가 하기로 한 거잖아.”
“나도 요즘 정신없어.”
“그럼 나는
안 바쁜 줄 알아?”
말은
집안일에서 시작하지만,
싸움의 본질은
집안일이 아니다.
그동안 아무 말 없이 넘겼던 날들,
혼자 처리했던 순간들,
괜찮은 척했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상대는 억울해하고,
나는 서운해진다.
서로 틀린 말은 하지 않는데,
대화는
점점 날이 선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누가 안 했느냐’가 아니라,
‘왜 말하지 않았느냐’라는 걸.
그리고 더 솔직하게는,
‘왜 늘 내가 먼저 감당했느냐’라는
질문이다.
바쁠 수 있다.
놓칠 수 있다.
그건
이해한다.
다만, 그 바쁨이 계속되면
집안일은
결국 말이 되고,
말은 감정이 되고,
감정은
싸움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싸움 끝에
다시 정리한다.
일을 나누는 방법보다,
미뤄진 마음을
어떻게 말할지.
다음에 또
바빠질 걸 알면서도,
그걸 미리 말하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