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독립의 시작

경제적인 독립과 가계부

경제적인 독립부터

난 살면서 '홀로서기'를 해본 적이 없다.

혼자 자취를 하고 혼자 회사를 다니면 독립한 것이 아니냐고 하니까 와이프가 뼈 때리는 말을 했다.

"오빤 살면서 경제적인 독립을 해본 적이 없어!"

"공과금 내 본 적 있어?"

"아니"

"그럼 경제적인 독립이 아니야"

그렇다. 난 한 번도 내 돈으로 공과금을 내본 적이 없다. 학교 다니면서 자취할 때는 부모님이 공과금을 내 주셨고, 커서는 결혼할 때까지 회사 기숙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기숙사비를 냈을 뿐 공과금을 내지 않았다. 결혼한 후에도 통장을 와이프에게 다 맡겨서 와이프가 알아서 관리하였다. '이번 달 전기세 많이 나왔네' '겨울엔 가스비 많이 나왔네' 같은 말만 들었을 뿐, 공과금에 대해서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나의 무지

일기는 95년도부터 27년간 적었어도 가계부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고 텔레뱅킹은 해 본 적이 없다.

솔직히 글 쓰고 있는 지금도 할 줄 모른다. 입금할 일이 있으면 와이프에게 계좌번호 주고 입금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예약과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도 와이프가 다 해줬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와이프를 너무 부려먹은 것 같지만, 와이프는 물건을 살 때 모든 쿠폰을 끌어 모아 할인에 할인을 받아 1,2천원이라도 아끼는 스타일이라 내가 조금이라도 비싸게 사면 난리가 났다. 그러다 보니 난, 자연스레 무지한 사람이 되었다.

  가계부 쓰기

경제적인 독립을 하려면 우선 내 자산을 알아야 한다. 통장정리 후 내 통장에 200만원이 남았다. 200만원을 시작으로 처음으로 가계부를 작성했다. 200만원에서 지출로 돈이 내려갈 때마다, 주식 떨어지는 것처럼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런 기분이구나. 와이프가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나한테 화냈던 이유, 이 조그마한 변화에도 기분이 천당과 지옥이다. 혼자 있으면 그동안 와이프 몰래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줄 알았는데, 가계부를 보니 어림도 없다. 당장 한 달 뒤가 걱정되는 금액이다.

의지하지 않기

나 스스로 남한테 의지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모든 자유가 남한테 의지하면서 얻은 결과물임을 깨달았다. 이제 나 스스로 변화된 삶을 살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나하나 새로 시작이다.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을 늦게 배운다고 부끄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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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등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