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 다른 시선
바람이 조금 센 날이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제주 길을 걸었다.
특별히 어디를 가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
돌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익숙한 길이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우리가 많이 걷던 길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바람도 낯설었고
돌담도 낯설었고
멀리 보이던 바다도 낯설었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봤다.
이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될지
사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는
걷는 것 자체가
어떤 시작 같았다.
오늘은 그 길을
다시 걷고 있었다.
돌담은 그대로였고
바다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느낌은 조금 달랐다.
처음 이 길을 걸을 때는
미래를 상상하며 걸었는데
지금은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며 걷고 있었다.
힘들었던 날도 있었고
괜히 막막했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somehow
여기까지 왔다.
같은 길인데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바다의 색도,
바람의 냄새도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옆을 보니
같이 걷고 있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도
이 길을 함께 걸었고,
지금도
같이 걷고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아, 우리가
그래도 여기까지 같이 왔구나.
그래서 우리는
말없이 계속 걸었다.
제주 길은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오고
걷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이어진다.
인생도
조금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는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서 걷고,
나중에는
지나온 길을 알기 때문에
다시 걷게 된다.
오늘 우리는
처음 제주에 왔을 때처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덜 불안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