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치의 복원

삶이 조금 나아졌다는 건, 다시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by 피터팬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정확히는,
안마신 게 아니라
안 마셨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 마시던 커피였는데,
수입이 줄고 지출을 하나씩 줄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빠진 것이 커피였다.


집에서 물을 끓여 마시고,
믹스커피 한 봉으로 대신하고,
카페 앞을 지나가도
괜히 발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커피 한 잔이
대단한 사치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 잔에는 ‘지금은 참자’라는 마음이 자꾸 붙었다.


지금은 안 돼.
다음에 마시자.
이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니니까.


그렇게 참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커피를 안 마시는 일이 익숙해졌다.


카페에 가지 않는 일,
메뉴판 가격을 보지 않는 일,
고소한 향이 나는 공간을 그냥 지나치는 일.
처음엔 아쉬웠는데
나중엔 아무렇지 않은 척도 하게 됐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꼭 비싼 것을 못 사서 속상한 게 아니라,
원래 내 일상에 있던 작은 것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커피는 그랬다.


배가 부르지 않아도 괜찮고,
당장 없어도 사는 데 문제는 없지만,
그 한 잔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하루는
조금 달랐다.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하나가
“오늘도 버텼다”는 기분을 주는 날이 있었고,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커피 한 잔이
답답한 마음을 잠깐 식혀주는 날도 있었다.


그걸 안 마시게 되면서
돈은 조금 아꼈지만,
마음 한구석은 자꾸만 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정말 별일 없는 날에
커피를 한 잔 샀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좋은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수입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제는 한 잔쯤 마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을 하고,
컵을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예전 같으면
“오랜만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오늘만 마셔야지”
같은 말을 속으로 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변명도 없었고,
합리화도 없었다.


그냥 커피를 마셨다.


천천히 한 모금 마시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맛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는 좋았지만,
정말 좋았던 건
내가 다시 이런 작은 사치를
내 일상 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사치는 꼭 비싸야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새 옷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근사한 저녁 한 끼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일 수도 있다.


예전엔 이런 것들을
너무 쉽게 누렸던 것 같다.
있을 땐 당연했고,
없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작은 사치라는 건
돈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 더 가까운 것이라는 걸.


그래서 그날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조금은 덜 불안해졌다는 신호였고,
조금은 다시 나답게 살고 있다는 확인이었고,
조금은 삶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 같았다.


여전히 조심해야 할 것들은 많다.
여전히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날도 있다.
여전히 참아야 하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계속 참기만 하면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쪽에 가까워진다는 걸.


그래서 가끔은
작고 조용한 기쁨 하나쯤
내 편으로 데려와도 된다는 걸.


다시 커피를 마신다.


이번엔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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