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는 만큼 쓰자
한동안 가계부를 쓰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급이 들어올 때는 가계부를 쓰기 쉽다.
이번 달 얼마 들어오고,
얼마를 쓰면 되는지 계산이 되니까.
하지만 수입이 불규칙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달은 조금 들어오고,
어떤 달은 거의 없고,
어떤 달은 아예 없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가계부를 쓰면
숫자가 자꾸 이상해진다.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더 많아 보인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가계부를 덮어두게 됐다.
괜히 적어봤자
마음만 복잡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그냥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입이 없어도 지출은 있다.
그리고 지출을 모르면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
돈이 많이 있어서 가계부를 쓰는 게 아니라
돈이 없을수록
더 알아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서 다시 가계부를 펼쳤다.
거창하게 시작한 건 아니다.
오늘 커피 한 잔.
점심값.
편의점에서 산 작은 간식.
그냥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돈이 나가고 있는지,
어디는 줄일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달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가계부는
돈이 많을 때 쓰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가계부 맨 위에 한 줄을 적어 둔다.
버는 만큼 쓰자.
지금 당장은 완벽하게 지키지 못해도
이 문장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방향은 조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