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주 앉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같은 자리에 다시 앉는 일이었다.

by 피터팬


집에 들어오자

아까보다 공기가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더 도망치고 싶지는 않은 상태였다.


각자의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 잠깐 서 있었다.

불을 켜야 할지, 말부터 해야 할지

둘 다 애매한 얼굴로.


“차 마실래?”

“응.”


아주 사소한 말인데

그 말이 나오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불을 다 켜지 않은 거실은

그냥 조용했다.

낮에 쌓인 하루의 소음이

다 빠져나간 느낌.


컵에 물을 따르고

의자를 다시 당기고

괜히 손에 잡히는 것들을 한 번씩 움직였다.

말을 꺼내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숨을 고르고 싶어서.


“아까 걷다가 말인데...”

“응.”


이번엔

말을 끊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내가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사실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나도...

너가 그 말 했을 때

그 말 자체보다

또 이런 식이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어.”


말이 많아졌다.

하루 동안,

그리고 그전부터 쌓여 있던 말들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말은 없었다.

대신

왜 그렇게 느꼈는지,

어디서부터 쌓였는지

그 얘기를 했다.


“우리 요즘

서로 너무 버티는 것 같지 않아?”

“응. 나도 그 생각 했어.”


이번 침묵은

아까와 달랐다.

도망치는 침묵이 아니라

정리를 끝내고 남은 침묵 같았다.


“이렇게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나도.”


그리고

거의 동시에,

비슷한 숨을 쉬고 나서

같은 문장이 나왔다.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대단한 결심처럼 들리진 않았다.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말도 아니었고

다신 안 싸울 거라는 약속도 아니었다.


그냥

다시 마주 앉겠다는 말,

또 불편해질 걸 알면서도

그래도 옆에 남아 있겠다는 선택에 가까웠다.


그날 밤

우리는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지는 않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것.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

그날은 충분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태에서

다시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그날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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