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하루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은 하루 종일 우리 사이에 있었다.

by 피터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루.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없을수록 하루는 더 길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도, 물 끓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만
기척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부엌에서 마주쳤을 때도 말은 없었다.


“잘 잤어?” 같은 말은
오늘 꺼내기엔 너무 멀리 와 있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
컵이 싱크대에 놓이는 소리만
필요 이상으로 또렷했다.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척했지만
사실은 한 단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괜히 알림을 몇 번이나 내렸다 올리고,
이미 본 화면을 다시 훑었다.


생각은 계속 옆방으로 흘러갔다.


점심은 각자 먹었다.


같은 집에 있는데도
누가 뭘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됐다.


“밥 먹었어?”라는 문장은
관심인지 간섭인지 헷갈려서
차라리 삼키기로 했다.


침묵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격이 바뀌었다.


처음엔 감정을 식히는 침묵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를 시험하는 침묵이 됐다.


누가 먼저 말을 걸까,
누가 먼저 지는 걸까.

괜히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귀가 먼저 반응했다.


발소리가 들리면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을 준비했다.


마주치면 괜찮은 척해야 할 것 같아서
차라리 안 마주치길 바랐다.


저녁이 됐을 때야 깨달았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많이 지쳤다는 걸.


싸운 날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날이
더 힘들 수 있다는 걸.


냉전은 싸움의 연장이 아니었다.


그건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하루 종일 집 안을 떠다니는 상태였다.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한 채.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묻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어디까지 상처받았는지,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루.


하지만 침묵은
말보다 훨씬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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